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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by 신기루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화장실 천장에는 오수배관과 하수배관이 있단다. 2년 전인가 한번 수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또 누수. 위층에 알렸더니 '누수탐지 첨단장비'라는 명함을 들고 나타난 남자. 욕실 천장 개폐구를 열더니 "커트칼 있어요?" 뭔가 서둘러 찾아줘야 할 것 같아서 찾아봐도 커트칼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 찾다가 그냥 앉아 있으니까 다시 한번 더 "커트칼 있어요?" "부엌칼이라도 드릴까요?""네" 부엌칼로 배관을 감싼 스펀지를 다 뜯어낸다. 30분 후 현관으로 나가더니 자신의 공구함에서 왕커트칼을 꺼낸다. 커트칼을 달라고 할 때부터 수상했다. 무슨 전문가라는 사람이 장비도 없나 했더니 이제야 꺼내는 건 또 뭔가. 아무래도 의심쩍다. 다시 30분을 더 핸드폰 플래시로 천장을 비춰보다가 '결로'라는 결론을 내리고 간다. 다시 물이 떨어지면 내일 전화하라고. 가고 난 다음 저녁이 되어 위층에서 물을 내리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물이 떨어진다.


둘째 날 아침에 전화를 했더니 두둥, 등장했다. 역시나 사다리 하나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아주 깔끔한 작업복을 입고 맨손으로 나타나 욕조를 밟고 올라가서 30분간 핸드폰 플래시를 들고 이리저리 비추다가 내일은 물 떨어지는 부분을 절개하고 배관을 교체하겠다고 하며 사라진다.


셋째 날 아침 일찍 다시 등장. 10분간 쳐다보더니 이제껏 바라보던 방향과 정반대를 보더니 '여기'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이제 누수 위치를 찾았으니 공사만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층에서 전화가 왔다. 위층에서도 수리까지 해 줄줄 알았는데 수리는 안 한다고 했단다. 그런데 첫날 그 기사는 10만 원을 이미 챙겼다고 한다. 수리비 포함인 줄 알고 미리 줬는데 탐지만 하고 사라진 남자. 나도 분명히 들었다. 탐지는 본인이 하고 수리는 다른 팀이 한다고. 결국 다른 기사가 와서, 당당히 사다리를 들고 나타난 기사님이 배관 이음새를 조이고 5만 원을 위층에 청구한다고 하면서 '사기꾼'들이 많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마도 위층에서도 탐지만 한다고 했으면 일을 처음부터 안 시켰을 것이다. 요즘 인건비가 많이 오른 틈을 타서 요런 신종 사기수법도 있다는 걸 알려드린다. 참 세상 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멀쩡한 인상이 참으로 아까운데 마스크 때문에 낯짝을 다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철판 낯짝이다. 선량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합법적으로 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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