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불쌍한 것이다. 개가 죽어도, 식물이 죽어도 하물며 사람은. 가끔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 외할머니이다. 그녀는 좀 왜소한 축에 들어가고 성질이 부드러운 편이다. 엄마와 이모들은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성질이 억세고 거칠다. 환경 탓이라고 그녀들은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천성인 것 같다. 7남매 중 외삼촌 한 명과 이모 한 명 빼고는 전부 드세다. 외할아버지 탓일까? 외할아버지는 내가 7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마도 암이 아닐까.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엄한 얼굴은 생각나는데 어떤 추억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외할머니 기억만 난다. 엄마가 일하러 가느라 잠시 외할머니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7살 때쯤. 이후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방학 때마다 외갓집을 방문했다. 남의 텃밭에 가서 일하고 손녀들 밥까지 해 먹이느라 힘드셨을 텐데. 어릴 적에는 그런 걸 모른다. 눈만 뜨면 방둑으로 나가서 아이들과 천지사방을 뛰어다녔다. 가끔 길을 잃어서 혼자 겨우 집까지 찾아온 적도 있다. 그렇게 무릉도원 같았던 어린 시절 추억의 한복판에 외할머니가 있다.
시골에서 나름 잘 살고 있던 할머니의 집을 굳이 팔아먹은 외삼촌. 집과 과수원 땅을 팔아서 혼자 먹었다고 둘째 삼촌은 그때부터 성질을 부렸고 '돈 다 가져갔으니 엄마는 너네가 모셔라'고 나 몰라라 했다. 이모들도 괘씸죄로 외할머니를 그다지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저마다 살기 바빠서이겠지만. 외할머니는 외삼촌네에서 구박도 받았던 것 같다. 현관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팍 밀었다는 외숙모 이야기며 눈만 뜨면 아침 한 숟갈 뜨고 경로당에 가서 하루종일 시간 보내고 저녁에야 들어왔다는 둥. 결국 마지막에 비극적으로 돌아가셨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모르나 식음을 전폐하자 그냥 무더운 여름날 방치된 채로 방에서 돌아가셨다. 엄마는 최근 외할머니도 자신과 같은 병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십이지장암은 음식을 못 넘긴다. 외할머니는 89세에, 엄마는 83세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방에서, 엄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외할머니가 살고 싶을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다면 훨씬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욕심 많은 외숙모가 외삼촌을 꼬드긴 건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의 재산을 팔아먹은 외삼촌은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 두 번째는 우리 엄마. 엄마 위에 이모도 산송장처럼 보이는데 목숨은 붙어있다. 가장 정정했던 엄마는 고목이 넘어지면 퍽하고 넘어진다고 갑자기 발병 후 4개월 만에 갔다. 엄마보다 외할머니가 더 보고 싶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소녀같은 외할머니가 어제부터 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