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뉴스를 보니 '조력사망 희망 한국인 회원 117명'... 아시아 국가 중 최다'라는 제목이 있다. 일명 안락사라는건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토론주제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다. 그때는 피상적으로 생각해 봐도 희망이 없고 고통만 있는 환자에게 고통을 멈추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 그런 가족이 되어 보면 그 고통은 환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픈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똑같이 고통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호스피스라고 해서 대단히 많이 도와줄 것 같지만 그냥 주기적으로 진통제 넣어주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 때로는 괴성을 지르는 환자가 있는 병실에서는 고통에 고통이 가중된다. 왜 스위스까지 가서 죽어야 하나. 환자는 단 몇 미터도 나가기 힘든 게 환자이다. 수액을 떼도 힘들고 병원을 벗어나면 더 무서울 것이다. 그런 환자가 스위스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기운이 있는 경우일 것이고 경제력도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6월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지만 한 차례 심사 뒤 국회 논의가 멈췄다(JTBC)고 한다. 정부는 기존 연명의료 중단 대상부터 넓히는 게 순서라며 반대하고 있다(JTBC)고 한다. 연명치료를 하는 건 코로 영양제를 받아도 살기를 원하는 가족들이 선택을 하겠지. 그것보다 더 우선한 것이 죽음 직전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 환자 아닐까? 어차피 기대여명이 3개월 혹은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이 났다면 그 환자에게, 가족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의식이 또렷이 있는 환자라면 더더욱 선택권을 줘야 한다. 엄마는 호스피스병동에 들어가기 전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그것은 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 환자에게 진통제만 주사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우리나라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너무 벅차기 때문에 죽음까지 안락하게 할 생각, 여유조차 없다. 누구나 나는 아니겠지, 나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가겠지, 편안히 죽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병원에 가면 암환자이지만 ct, x-ray, mri, 피검사를 수시로 한다. 엄마는 퇴원을 결정한 당일에도 ct를 찍으라고 해서 이제 그만 찍겠다고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나기 직전 엄청난 의료비가 든다. 의료계의 이익에는 조력존엄사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평화롭게 죽고 싶고 평화롭게 보내드리고 싶다. 그렇다면 손 놓고 있다가 언제 그것이 나의 일이 될지 모른다. 그때가 되어 아무런 대책 없이 누워만 있어라. 진통제만 주겠다고 하면 얼마나 끔찍할까.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일단 환자가 제일 끔찍한 고통을 겪고 돌보는 가족이 죽어가는 나날을 지켜보는 고통이 있고 아직까지 임종을 지켜본 트라우마가 있다. 한동안은 불을 끄고 눈만 감으면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힘들었다.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엄마는 돌아가시기 2주전부터 빨리 죽고싶다고 했다. 정말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할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떤 것이 정말 인간다운 죽음인지, 삶인지 다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