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실에 4명의 여자가 있다. 두 명은 무대에 올라가지 못하고 배우들의 대사를 뒤에서 얘기해 주는 프롬프터였다고 하면서 과거에 받은 설움을 서로 얘기하며 분장실에 박혀 있다. 주연배우이면서 드라마에도 섭외를 받아 바쁜 나날을 보내는 또 한 명의 배우. 그런데 대사가 왜 이렇게 안 외워지는지.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또 한 명은 능력도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조급해하며 병원에 있다가 퇴원했는데 정신이 좀 이상해 보인다. 베개를 끌어안고 다니면서 주연배우에게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안톤체호프의 '갈매기'에서 '니나'역할을 하는 주연배우는 니나의 대사를 읊조린다. 얼마 전 '갈매기'연극을 봐서 그 대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때 그 배우는 대사가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지금 분장실에서 돌아가면서 '니나' 대사를 다 한 번씩 하는데 너무 잘한다. 한 명이 좀 거슬린다. 대사를 할 때 얼굴 인상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얼굴 근육은 그대로인 체 대사에 매여서 외우기 급급하다고 해야 할까. 프로의 경지까지 올라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프롬프터만 했다는 배우들이 주연배우를 능가하는데도 연출자가 쓰지 않는 일도 있을까? 단 한번 사는 인생인데 누구는 무대에서 매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누구는 어둠 속에 있다면 억울할 것 같다. 언젠가 배우가 펑크 나는 날 내가 대신 설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계속하는 게 맞을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배우 뒤에서 계속 있다가 그대로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평생 무대 위에 제대로 서 보지 못했던 그들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분장실에서 노닥거리다가 무대로 한 번 나가보기로 하고 무대에 올라섰을 때 왜 내가 눈물이 찔끔 났을까? 한 번도 무대 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내 인생의 무대는 어디일까? 나에게도 꿈이 있긴 하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더 기다려보면 될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 뒤에 서 있다가 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터덜터덜 오게 만든 연극이었다. '잘 살아내고 버텨주었어'라는 대사가 좀 식상했는데.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라며 결국 스스로 토닥이면서도 왜 서글플까? 우울한 코미디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