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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울지 않는다

by 신기루

아파트 뒷산에서 한여름 내내 번개 치듯 울어대던 매미들이 오늘은 소리가 심히 약해졌다. 태풍이 온다고 비를 내려서인지 지금은 그나마 적막하다.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 붙어 있다. 소리 없이. 비를 피하러 온 건지. 어제까지도 베란다 방충망에서 아침잠을 깨우며 매매맴 울던 놈이 오늘은 말없이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지. 곧 하직할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지. 소리 없음이 왠지 처량해 보인다. 한여름 내 매미지옥에 살면서 언제 저놈들이 모두 사라질 날이 올까. 저놈들의 천적들은 과연 누구일까. 천적들이 다들 어디로 간 건지 분노를 끌어올릴 때도 폭염 못지않게 못 살게 굴던 놈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져 버렸다. 갑자기 다른 세상에 놓인 것처럼. 여름을 시원하고 조용하게 보낸 기억이 잘 없다. 더위만큼 사건, 사고도 많은 게 여름. 활동성이 많은 계절이라 그런지 티브이로 전해지는 세상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개인사까지 덥다 더워 살아있음을 지독히도 훈계하듯 온 몸뚱이를 불판에 달궈주는 계절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하게 살고 싶다. 인간이 괴롭혀댄 지구의 복수 앞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지구는 팔팔 끓고 핵오염수는 바다를 오염시킬 것이고 다시 그것을 먹고 비참한 죽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 불안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 미쳐 날뛰는 게 아닐까. 미의 미친 절규는 이제 여름과 함께 막을 내리겠지만 우리들의 절규는 더 계속 이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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