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최근 나의 부모도 몇 년을 사이에 두고 계속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2019년도, 엄마가 2022년도 그리고 시아버지가 2023년도. 대부분 병상에 오래 누워있지 않고 몇 개월 사이로 급하게 가셨다.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은 하지만 완전한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연명치료 거부. 그 싸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른다. 고통을 줄이는 것에는 무조건 동의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겠다는데 손을 놓는 것이다. 물가 이 편에 앉아서 저 편으로 가는 이를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모질게도 선택, 이성적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끝이 왔음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내 친구 언니는 의사인데 엄마가 목줄에 영양제를 흡입하게 하면서도 계속 연명치료를 했다. 의사들은 죽음을 우리보다 더 잘 아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를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연명치료를 했다는데... 난 상대방의 고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못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연명치료를 할 상황도 아니었다. 암이니까.
시아버지는 담도의 관이 막혀서 황달이 왔고 관에 단단한 무언가가 있어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일단 관을 뚫는 수술을 했는데 다시 두 달 후 단단한 무언가를 빼내는 수술을 위해 몸을 추스르고 오라고 했다. 요양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폐렴이 와서 상황이 악화되어 임종을 했다. 요양병원에서는 중증환자를 케어할 수 없는 곳인데도 시술한 대형병원에서 그곳으로 보낸 것이 패착이 아닐까. 시술한 병원에서 계속 치료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이 남는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선택'이란 걸 잘해야 한다.
글을 안 쓴 것은 이러한 일과 더불어 코로나도 처음 걸려보고 갑자기 눈에 비문증이란 게 생겨버렸다.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증상이 갑자기 왼쪽 눈에 와 버렸다. 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리체가 노화가 되면 그런 증상이 온다는데. 내 몸의 장기나 안구나 신체의 모든 것이 낡아감을 느껴버리니 인생 허무하고 기운이 쑤욱 빠진다. 완전히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일단은 큰 병원을 예약해 놨고 눈을 굴리면 꺼먼 게 어지러이 날아다니니까 정신도 없고 우울하다. 매일 조금씩 익숙해지긴 하는데.
어제는 연극을 보러 갔다. 컴컴한 공간에서는 눈앞에 검댕이가 날아다니는 게 다행히도 안 보였다. 연극 보는 데는 아무 이상 없어서 즐겁게 보고 왔다. '굿닥터', 코미디극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까르르 대며 웃었다. 나는 웃음 포인트가 좀 달라서 남들과 다른 박자로 웃거나 피식 댄다.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극인데 '재채기'에서 느낀 생각은 '나'가 과하게 몰입하는 생각이 '남'에게는 털끝만큼도 가치를 두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모임에서 대화를 하고 돌아오면 '아, 그 말을 내가 왜 했지? 상대가 기분이 나쁘면 어떡하지?' 뭐 이런 생각들로 자신을 괴롭힐 때가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만 과하게 그 생각에 매달리고 괴로워할 때가 있다. 너무 남의 생각에 집착하고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의 실수에 너무 자책할 필요 없다는 것을. 어쩌면 상대방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연극을 보러 가는 이유는 무거운 나를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인습, 굴레, 질서, 삶의 무게들로부터 좀 더 가벼운 나, 그냥 나를 찾으러 가는 길이라 발걸음이 언제나 가볍다.
김수현 배우를 요즘 자주 본다.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도 재밌었고 손숙 배우와 함께 한 '토카타' 이후 세 번째로 만났는데 또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