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이 되면서 은행잎들도 이미 떨어지고 있다. 아직 완연하게 무르익어 불타오른 것 같지는 않은데 벌써 말라서 떨구는 잎들도 많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지'라는 생각으로 영접을 위해 아침부터 나섰다. 설거지도 팽개쳐두고. 설거지를 하고 지치면 오늘 또 드러누워서 하루를 보낼 것만 같았다.
서울대공원도 좋지만 거리가 좀 멀어서 오늘은 어린이대공원으로 가야겠다.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나처럼 혼자 떠도는 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적당히 나이 먹은 남자와 여자들이 목적 없이 걷고 있다. 나도 어쩌다 백수의 삶을 사는, 아니 은퇴자라고 하는 게 더 맞겠지만 언뜻 보면 백수처럼 보인다. 직업 없이 살았다면 전업주부라는 네임을 달았겠지. 주부의 일이 많은 건 사실인데 옛날 엄마 세대들처럼 반찬을 내 손으로 다 만들지 않아도 사 먹을 데도 많고 식당도 많다 보니 집안일이 크게 많지는 않다. 더구나 크게 흥미도없다. 요즘도 청국장 메주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손재주도 없고 귀찮다. 연극 공연장에 앉아 있고 싶고 음악 연주회에 가고 싶다. 퇴직하고 2년째인데 드디어 김치를 성공했다는 사실이 큰 변화이긴 한데 여전히 김치를 열심히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없이, 최소한 먹을 것만 하는 수준이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배달음식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카레를 하나 하려고 해도 장을 봐야 한다. 감자, 양파, 당근.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은근 시간이 많이 투자 되는 게 요리이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마저 아까운 아이들은 그냥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나 역시 주부 초기에는 식당에서 사 먹거나 포장하거나 반찬가게에서 사거나. 맨날 된장찌개, 김치찌개만 끓였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안 끓인다. 국을 먹는 것이 염도가 높은 것 같기도 하고 오래 먹은 음식들이 좀 질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콩나물이나 취나물 같은 나물요리를 비벼 먹거나 카레를 좋아해서 카레를 자주 먹는다. 아이들이 잘 안 먹으니까 안 하는 것도 있다. 된장찌개는 특히. 지금은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밥과 과일을 제때 챙겨주고 있는데 내가 사라지면 곧 배달요리로 배를 채울 것 같다. 문화는 아주 천천히 바뀌는 것처럼 김치는 당연히 공장김치를 먹고 음식은 식당음식을 먹으며 지낼 것 같다. 우리 후세대들은. 메주를 만들고 고추장을 만드는 신기를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집밥을 열심히 끓여대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서서히 사라지는 문화, 사라지는 세대가 아닐까.
박물관에 가 보면 우리 옛 세대가 저렇게 살았다고? 할 때가 있다. 예전에 외할머니댁에서 디딜방아를 밟아봤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내 노동이 되어버렸다. 그 할머니는 지금 사라졌고. 간장을 담그는 우리 엄마도 사라졌고 집밥을 하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르는 나는 20~30년을 더 살다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아들들, 딸들의 세대는 모든 음식을 외주화 해서 먹고살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대공원에는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보면서 백수이자 은퇴자, 곧 60이라는 문턱을 넘어가는 세대가 흔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며상상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