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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루 Nov 25. 2023

이런 밤, 들 가운데서

 날씨는 어제보다 더 춥다고 하지만 일주일간 묵은 때를 벗기 위해 외출을 했다. 남편에게

" 난 문화쇼핑 하잖아. 대신 옷도 안 사고, 다른 거 안 사잖아."


그러고 보니 20대부터 책은 줄창 샀다. 대학교 때 엄마한테 책 사야 된다고 돈 달라고 하면 항상 줬다. 그 시절 넉넉한 편도 아니었는데 우리 부모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요즘 퇴직하고 나서는 영화, 연극, 음악, 그림을 보러 다니는 데에 주로 돈을 쓴다. 눈이 침침해서 책은 좀 멀어졌다.


 오늘도 문화쇼핑 하길 잘했다. 솔직히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몰라 기대반 걱정반 하고 갔는데 둥글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고 한가운데에 배우들의 무대가 쪼그맣게 마련되어 있었다. 배우 5명이 나오는데 그 다섯 옆에 객석 좌석도 마련되어 있어서 누가 배우인지 관객인지 모르게 세팅이 되어 있다. 뒷자리보다는 앞자리가 나을 것 같아서 배우들이 앉는 라인 바로 뒤에 앉았다.


 무대가 시작되자 배우들이 시각장애인을 고려하여 자기소개를 하면서 어떤 옷을 입었는지, 머리는 어떤 스타일인지, 신발과 옷의 색깔을 말로 설명했다. 그리고는 각자 있었던 일상을 5명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우리 일상에서 주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듣다 보면 그냥 이웃집 아줌마 또는 친구가 수다 떠는 것 같다. 낭독극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굳이 왜 무대를 가운데 두고 좌석을 둥글게 배치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워크숍 분위기랄까? 뭔가 토의, 토론을 해야 할 것 같은. 어쩌면 관객과 하나가 되어 같이 어우러지고 싶다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긴 세팅 같았다. 그래서 연극 도중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동작에서는 따라 하고 싶었고 박수를 치며 호응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너무 엄숙하게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 때문에 용기를 못 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이 앉아서 손짓춤을 추길래 간단한 동작이라 따라 했다. 내가 즐기러 온 거니까 눈치 보지 말고 즐기고자 용기를 내봤다. 달랑 혼자 가서. 아무도 나와 함께 따라 추지 않았다. 정태춘 노래는 평소에도 좋아하는터라 즐겁게 콘서트에 온 것처럼 손짓춤을 췄다. 


" 아, 오늘도 나오길 잘했네." 하면서 나오다가 작가 영상이 출구에 있길래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조연출이라는 분이 와서 배우들이 마지막에 같이 호흡하며 동참해 주어 감동받았다고 전하라고 하더라며 다가왔다. 그런데 반가운 나머지 투머치인포메이션(TMI)해버렸네. 나는 30년 국어교사를 하고 은퇴를 해서 1년간 연극을 많이 보고 6개월 연극영화 연수도 해서 빨리 흡수가 되었다. 조연출의 눈이 깜빡깜빡... 빨리 뜨고 싶은 눈치. 그냥 이야기만 전하러 왔을 뿐, 나에 대해 1도 궁금하지 않은 눈빛. 그냥 정태춘 노래가 너무 좋아서 같이 녹아들고 싶었다고 했으면 작가와 배우들이 더 좋아했을 텐데.

 

 연극을 보다 보면 계속 일기예보를 하고 뉴스를 전하고 옆집 할머니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10월 28일이 나오고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야기도 나온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그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기도를 올린다. 아주 평범한 일상 가운데 일어난 엄청난 그 일을 놀다 보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결코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놀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 지인과 나는 이 일로 30년 가까운 동료의 관계를 끝냈다. 아직도 그이는 모른다. 내가 자주 전화를 걸었는데 지금은 오는 전화만 받는다. 이제까지 걱정하며 살피던 마음을 그에게서 싹 걷어치웠다. 역사의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이나 철학이 달라도 같이 놀 수는 있지만 비인간적인 사람(?)과는 같이 놀 수 없다.


그리고 서로 종이 다른 자유와 사랑이, 뻐꾸기와 앵무새 둘이서 새장을 탈출한 사건이 나오는데 서로 다른 종으로 인식될 만큼 많은 차이를 가진 인간들이 좀 더 자유로우면서 사랑하며 살기를 희망하는 걸로 해석했다. 작가 영상에서 보면 '자유와 사랑'을 모든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룬다고 했다. 맞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유와 사랑이지.....


 그리고 연극에서 나온 말 중 '케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무조건 '케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그 말속에는 위로, 관심, 사랑, 돌봄, 챙김 등 많은 의미가 있는데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아들을 케어하러 왔다고 남들에게 말했지만 그를 돌봐주고 위로하여 정체되어 있고 절망하며 좌절하는 것으로부터 일으켜 세우러 온 것이다. 얼마 전 본 시험결과가 어제 발표되었고 예상대로 떨어졌다. 시험 친 다음날부터 한 달간 게임을 옴팡지게, 징글징글하게 많이 하더니만 오늘 가방을 들고 나갔다.


 "오오, 가방을 다 들고 나가네? 할 땐 하고 놀 땐 놀고 참 잘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지만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게임하고 들어올  속이 썩는다. 하루종일 영화 보는 나와 하루 종일 게임하는 아들은 무슨 차이가 있겠나 하며 위로할 때도 있지만 나는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다 하면서 영화를 보지만 아들은 게임만 하루종일 하니까 문제라는 거다. 그것 때문에 친구들은 다 자리를 잡았는데 아직도 공시생이지 않나.

 

 문화쇼핑은 나를 다스리는 일이기도 하다. 매일 의식을 각성하지 않으면 머리가 녹슨다. 보고 깨닫고 쓰고. 쓰는 일의 자양분이 되는 영화, 연극을 보며 즐기고 그걸 다시 콘텐츠로 생산해 낼 수 있어서 나의 일상이 그렇게 무료하지만은 않다. 문화쇼핑은 나의 내면을 가꾸는 것이기에 난 더 예뻐질 것이다. 

인터파크에서 캡쳐함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12.9일까지 공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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