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김홍빈, 히말라야에 잠들다(2021.8.29,KBS)' 와 '열손가락의 눈물(2019.9.15, KBS)', 두 편의 다큐를 봤다. 두 편 모두 '김홍빈'에 대한 다큐이다. 그는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등정 시 식량부족 및 고소증으로 인해 수면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이때 양손이 동상에 걸려 열손가락을 잃었다. 그래서 등강기에 손을 걸고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손이 없으니까 두 다리의 힘으로 지탱하면서 팔로 잡아당기면서 올라야 한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는 양손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다.
ㅡ어마무시한 기록 ㅡ
2006 가셔브룸2봉(8035m)
2006 시샤팡마(8027m)
2007 에베레스트(8848m)
2008 마칼루(8463m)
2009 다울라기리(8167m)
2011 초오유(8201m)
2012 k2(8611m)
2013 칸첸중가(8586m)
2014 마나슬루(8163m)
2017 로체(8516m)
2017 낭가파르밧(8126m)
2018 안나푸르나(8091m)
2019 가셔브룸 1봉(8080m)
2021 브로드피크 ( 8051m)
2019년 가셔브룸 1봉정상에 오른 건 3번째 만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 이제 하나 남았다.
2021년 브로드피크를 향해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정상. 감격도 잠시, 막상 정상에 오르면 제대로 즐길 시간이 없다고 한다. 사진 찍고 내려오기 바쁘다.더 바람 불고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온다. 그런데 김홍빈은 왜 하산 시 죽음을 맞게 되었을까.
잠시 그때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국적 등반대에 소속된 아나스타샤 루노바(나스야)는 김대장보다 조금 앞서 정상 정복을 하고 하산했다. 러시아의 마운틴지 7월 22일자 보도에 의하면 나스야는 강한 바람이 불어 해발 7900m 부근에서 밧줄에 매여 급경사면에 매달리게 됐다. 이때 하산 중인 김대장이 나스야를 구조하는 다른 등반가들을 돕기 위해 내려온 걸로 기억한다. 구조 중 김대장이 다시 비탈면에 매달리게 되었고 하산 중이던 다른 등반가들은 그의 구조를 외면했다. 이후 그를 구조하기 위해 올라갔을 때 이미 그의 상태가 많이 나빠져 있었고 밧줄로 끌어올리다가 등강기가 고장이 나자 고치려던 과정에서 밧줄이 분리되어 추락했다. (출처- EBS, 김정기글 요약)
김홍빈 대장이 쓴 시가있다.
손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은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는 사고 후 팬티조차 혼자 입지 못 해서 남의 손을 빌려야 했다. 산행 중 물을 마시고 싶을 때도 남이 따라 줘야 한다. 그는 양손을 잃은 뒤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상에 올랐을 때도 혼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올라왔다고. 산행은 고독한 혼자만의 싸움 같지만 함께 하는 셰르파와 대원들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는 걸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다. 그는 사람을 사랑했기에 마지막까지 따뜻한 마음을 실천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타인을 구조하다가 위험에 처했지만 다른 등반대원들로부터 구조를 받지 못 했다. 구조하지 않은 등반대원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단다. 그들도 에너지 소비도 크고 전문성 없이 구조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김대장의 마지막 구조 손길이 더욱 따뜻하고 값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그의 행동은 더욱 빛난다. 그의 사람 향기가 참 좋다.
그는 신들의 땅에서 드디어 잠이 들었다.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는 그 땅에 오늘도 사람은 오른다.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