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기회를 안 준다고 해서 너까지 기회를 박탈하지는 마.
영화를 볼 땐 배우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곧 작가의 말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새기면서 봐야 할 때가 있다. 스스로 생을 접으려다가 용기가 없어서 발길을 돌린 00. 00은 갑자기 허기를 느끼고 배가 너무 고파서 식당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잠까지 청한다. 그곳은 하루에 손님이 한두 명 들르는 곳이다.
이렇게 장사를 하면 어떡하냐. 더 열심히 해서 손님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하니까
'열심히 하면 병난다. 손님이 너무 많아도 손님 하나하나 배려를 못 해서 손님에겐 나쁜 것이 된다'라고 한다.
보통 가게를 열면 손님이 많기를 바랄 텐데.
우리는 더 열심히 못 살아서 안달이다. 여행을 가도 더 많이 봐야 하니까 더 일찍, 더 바쁘게 돌아다닌다. 그래서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가 싫다. 혼자 오래 한 곳에서 생각을 멈추고 싶다. 그럴 때 존재의 향기를 느낀다고나 할까. 존재와의 대화. 잠시 내 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낚아채기도 하고.
먹을 것이 매달 공급된다면 돈은 조금만 벌면 된다. 쌓아두려고 하니까 욕심 내는 거다. 통장에 돈이 붓는 재미도 있지. 내 시간을 일하는 데에 쓴다면 돈은 벌겠지. 나를 위한 시간은 그 돈보다 더 가치가 있지.
이제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영화를 보면 대사 하나하나가 참 예쁘다.
'지는 노을을 보면 왜 질 때까지 저렇게 예뻐도 되나. 그래서 눈물이 난다'라고 한다.
이 영화는 참 사람 냄새가 난다. '이해의 선물'이라는 소설처럼 상대를 배려하는 이야기들로 인해 따뜻하다.
그런데 살짝 궁금해진다. 저 여자는 왜 일본까지 와서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맛있는 걸 만들어 사람들을 먹이는 식당을 할까. 딱히 돈도 벌려고 하지 않고.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최대한 조용히, 즐기며 사는 삶을 사는 걸까. 이유가 있었다. 시한부였다.
우리 모두는 시한부이다. 항상 그것을 잊어먹는다는 게 문제이지만. 나 역시 70을 데드라인으로 본다. 이후는 돌아다니는데 장애가 많을 것 같다. 움직임도 느려지고 체력도 없고. 그래서 그 시간까지 편안하게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팔십 넘으면 동네밖에 못 다닐 것 같다. 요즘 청년들은 40까지만 일하고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데. 우리 장년층들은 참 바보같이 살았나 보다. 못 먹고 가난하게 살아서 즐기는 게 뭔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청년들 세대만 해도 우리나라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고 먹고 쓰고 놀면서 사는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나. 그래서 노는 데에는 특화된 아이들 같다. 주변에 보면 퇴직을 하고도 놀게 없어서 텃밭이나 가꾸려고 한다며 전원주택을 찾는 사람이 있다. 놀 줄 모르면 큰일이다. 퇴직하고 나면 집안이 감옥이 된다.
지금까지 힘껏 돈 벌었으니 이제 힘껏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