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 사라졌다' 이것과 비슷한 제목의 미국 영화가 있다. '월요일이 사라졌다.' 출산을 제한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7명의 쌍둥이가 요일별로 한 명만 바깥으로 외출을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일본판 '수요일이 사라졌다'는 내 안에 7명의 정체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패러디를 한 건데 전혀 다른 내용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안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노는 정체성, 일하는, 웃는, 우는, 야한, 정숙한, 이렇게 치자면 일요일까지가 아니라 8,9,10 요일까지의 정체성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살짝살짝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면의 십 부까지 아래로 내려갈 때도 있고 1부, 2부 정도에서 끝날 때도 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넌 도대체 누구냐.‘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도 많다.
'대체 넌 뭘 하고 싶은 거냐.'
오늘, 내일, 매일 다르게 살고 싶다. 별나게 살고 싶다.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다. 그래서 이옷 저옷 바꿔 입기도 하고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가보기도 한다. 가장 중심 된 자기 정체성이 있긴 하다. 주된 정체성. 그것이 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가끔 나오지만 가장 즐겁고 진짜에 가까운 정체성도 있을 것이다.
뒤죽박죽 내 인생이라고 하지만 내 머리가 더욱 뒤죽박죽이다. 메두사가 춤을 추듯 백가지, 천 가지로 뻗어가고 싶은 내 마음. 오늘은 작가, 내일은 배우, 모레는 모델, 마음은 그렇다. 그런데 한 가지만 하라고 강요받으니까 한 가지만 하고 사는 것 같다. 배우 하정우를 보면 배우, 화가, 또? 그가 다른 그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두 가지는 대중적으로 나왔다. 대부분은 하나밖에 못 한다.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고 물질적인 한계도 있고. 유튜브에다가 해 볼까? 패션모델, 사진작가, 아나운서, 코믹배우, 먹방. 요즘 애들 보면 유튜브에다가 뭔가를 한다. 나름대로. 혼자 즐기면 된다. 남이 알아주는 건 두 번째이고.
나도 꿈꾸던 걸 꿈으로 끝내지 말고 한번 해 보자. 매일 아침 다른 요일이가 되어서 나가보자. 내일은 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