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와서 내 글을 읽고 라이킷을 해 주면 나도 가서 그들의 글을 읽어 본다. 몇 편 읽어 보지 않은 초보이지만 다들 마음에 상처 입고 아파 보인다. 물론 나부터도 그렇다. 세상살이하면서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프지 않으면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글이 나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고통을 쏟아내야 시원해지니까.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싶고, 답을 찾고 싶고, 토해 내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너무 아픈 글은 못 읽고 중간에 덮어버릴 때가 많다. 너무 깊은 상처는 잘 못 들여다본다. 내 상처도 아직 깊으니까.
영화를 보는 것도 내 상처를 쓰담 쓰담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나보다 더한 역경도 헤쳐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을 보며 안전지대에 있는 자신에게 안도하고, 죽음을 보며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그런 것 아닐까.
종교가 없다면 그들의 아픈 영혼들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나. 이런 말이 있다. 목사님이 위로해 주고, 하느님이 위로해 주고, 성경의 말씀들이 위로해 주고, 자매님들이 위로해 주고.
영화도 그렇다. 내가 가진 욕망들을 그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훔치고 물어뜯고 할퀴고 도망치며 속인다.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며 대리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속 알맹이를 그대로 다 드러내어 쓴 글을 엿보기, 훔쳐보기를 하면서 너무도 닮아 있는 내 모습과 같아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면서 '그래, 그래, 나도 그래.' 하면서.
내 글에 누가 맞장구쳐 주길 바라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 모두 상처투성이다. 의사는 주사를 놓지만 우리는 한 자 한 자 상처를 글로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