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머리에 땜통이 생겼다. 일명 원형 탈모증. 정수리 부근과 뒤통수, 옆통수까지. 졸업 후 이 사회에 중요한 핵심 멤버가 될 거라 굳게 믿었는데 우수수 떨어지는 결과를 받아 들고 절망했다. 이 사회에서 어서 오기를 기다려 줄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노력한 만큼 성취를 해 온 사람이라면 더 화가 날 것 같다. 일종의 화병이다.
나를 닮았으면 가끔은 완벽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결벽증도 가졌으리라. 그 피가 어디 가나. 예민하면서 성질 급하고 마음은 여리지만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당하는 건 못 참는다. 그놈의 자존심.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젊은 피를 쉽게 수혈받지 않았다. 눈은 이마 위에 붙어서 가장 센 곳에 척척 서류를 넣었다. 그런데 경력도 없고 백도 없고. 그러니 외모의 핵, 헤어에 구멍이 숭숭 나기 시작했다. 연고를 머리가 비어 있는 곳에 발라주는 어미 마음은 정말 찢어진다.
그런데 인도에 인턴으로 가 있던 아들 친구에게서 놀러 오라고 계속 연락이 오던 참이었다.
“엄마, 00이 심심한지 인도로 자꾸 놀러 오래.”
“그래?”
“근데 졸업식이 한 달 남았는데 졸업식 참석도 하고 싶고....”
그런데 졸업식보다 아들 머리에 난 스트레스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 관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야, 졸업식 안 가면 어때? 졸업여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와. 보내줄게. 해외여행. “
이렇게 해서 우리 아들의 졸업식 사진은 없다.
인도에서 잘 놀고 있는 아들에게 그 당시 들어가고 싶어 하던 회사 채용공고가 나서 거기에 한번 넣어보라고 연락을 했다. 그래서 거기서도 이력서를 정리해서 공고기한을 맞춰서 넣게 했다. 난 나쁜 엄마다. 역시 떨어졌지만. 그래서 나쁘다는 거다. 그냥 가만히 놔둬야 하는데. 치료하러 간 아이에게 굳이 입사 스트레스를 주었으니.
그때
"괜찮다, 아들아. 천천히 가도 돼. “
이런 말을 더 자주 해 주지 않아서 미안하다. 말 안 해도 혼자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낙오될까 봐. 사회가 주는, 가정이 주는, 친구, 연인이 주는 은밀하게 강력한 압박을 피해 갈 수 없었던 마음 약한 우리 아들. 이 시대의 아들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달간 인도를 다녀오더니 땜통이 사라졌다. 이 얼마나 휴식의 값진 선물인가. 원형 탈모증 치료를 하느라 병원을 들락거릴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갔어야 했던 거야.
뭔가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한 번쯤 떠나서 먼 곳에서 그걸 바라보면 오히려 쉽게 풀린다. 붙들고 용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 그때 아들의 고통이 새삼 떠오른 이유는 지금 나의 상황과 같기 때문이다. 온몸에 발진이 돋아 이틀에 한 번씩 알레르기 약을 복용하면서 학교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퇴직 선언을 하고 나니 갑자기 사라졌다. 조금은 남아 있지만 약을 먹지 않고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의 당시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나온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직접 치료보다 좀 더 멀리서 바라보면 해결이 될 것 같다. 연고보다는 여행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