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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빅토리아 피크 등산 실패(?)기

펭귄 표류기 : 홍콩편 EP3

by 펭글

"오... 저 줄은 대체 뭐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끝없이 이어지는 인파였어요. 처음엔 생선가게 줄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피크 트램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네요.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그 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어요. 그래도 저는 자유로운 영혼의 모험가 펭귄이니까 두 발로 직접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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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로 가득한 트램 대신 등산로를 선택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홍콩 공원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섰죠. 처음에는 그저 경사가 조금 있는 길이었어요. 남극의 빙하를 오르는 것보다는 쉽더라고요-! 양옆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서있었고, 간간이 벤치도 보였어요.


올라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져서 땀이 조금씩 배어 나왔지만 달라지는 풍경을 보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빌딩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고, 멀리 바다도 눈에 들어왔죠. 남극도 한 경치 하는데, 여긴 또 다른 느낌이에요-! 숨이 가빠질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바라보았어요. '캬, 역시 이 맛에 오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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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갑자기 길이 뚝 끊기고 생뚱맞게 자동차 도로와 웰컴마트가 나왔어요. 어라, 구글맵스는 이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물 한 병도 챙기지 않은 채 떠났던 터라, 갑자기 나타난 마트는 정말 이름 그대로 웰컴-! 광활한 바다 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빙산 같았어요. 목마름을 달래려 물을 사 마시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섰죠. 하지만 이번에는 더 엉뚱하게 고급 빌라촌이 나왔어요.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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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등산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펭귄의 야간 산행은 몹시 위험하니까요-!) 구글맵스에는 도보로 9분 거리라고 나와 있는 것이 아쉬웠지만, 여행 와서 조난당할 수는 없었죠. 결국 우버를 불렀어요. 그런데 기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피크로 가는 도로에 큰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더라구요. 그렇게 살짝은 허무하게 하산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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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요-? 우리는 늘 정상을 목표로 해요. 높은 자리, 좋은 평가, 인정받는 순간... 제가 남극에서 이곳까지 온 것처럼요. 때론 숨이 차고, 땀이 흐르지만 정상에서의 풍경을 상상하며 견뎌요.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죠. 때론 길이 완전히 끊기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나기도 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르는 동안 보았던 풍경들이 있잖아요-! 숨이 차올라 잠시 멈추었을 때 숲 사이로 마주한 하늘과 바다, 웰컴마트 앞에서 마신 시원한 물 한 모금. 남극의 풍경과는 또 다른 특별한 순간들이었답니다.


센트럴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벼웠어요. 실패(?)한 등산이었지만 꼭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었죠. 미리 지도에 저장해 둔 가게는 춘절 연휴로 문이 닫혀있었어요. 오늘따라 문이 닫힌 선택지를 골라 찾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났답니다. 하지만 덕분에 코끝을 따라 걷다가 발견한 작은 식당에서 쫄깃쫄깃하고 아주 이-븐하게 삶아진 에그 누들을 맛볼 수 있었어요. 생선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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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간들의 MBTI로 따지면 '극 J형' 펭귄이예요-! 하지만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큰 재미로 돌아오나 봐요. 호텔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빅토리아 피크 쪽을 올려다보았죠. 정상은 못 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특별한 하루였어요. 붐비는 전망대 대신 나만의 속도로 걸으며 발견한 숨은 풍경들이 있으니까요. 다음에 홍콩에 와도 다시 그 길을 택할 것 같아요-! 또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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