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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Sep 01. 2023

어렵고도 어렵도다! 40대 소개팅

결혼에 뜻이 생겨서지 아주 오랜만에 소개팅이 들어왔다. 직업과 나이 그리고 사는 곳의 정보만 들었는데 주선자가 적극 추천해서 만나보기로 했다. 일정상 결혼정보회사에서 소개해준 두 사람을 만난 후라 큰 기대 없이 만났는데 세 사람 중 가장 괜찮았다. 참,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큰돈 내고 가입한 결혼정보회사보다 소개로 만난 사람이 더 마음에 든다니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이전에 만났던 두 사람이 큰 결점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훨씬 나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나았다.


그동안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카페에서 만났는데 이 분은 주선자가 있는 소개팅이라 그런지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셨다. 꽤 긴 시간이었는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자연스럽게 에프터를 신청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에프터는 없었다. 꼭 당일에 에프터를 신청하라는 법은 없으니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면서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선톡을 몇 번 해보았다. 답장은 잘 왔고, 본인이 뭘 하고 있는지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반응이 없으면 마음을 접으려고 했는데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그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선톡을 중단해 봤는데 아쉽게도 그의 선톡은 없었다. 긴가민가했던 그의 마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아차렸다. 그제야 남자가 여자를 헷갈리게 한다는 건 마음이 없다는 뜻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가 나를 헷갈리게 한 게 아니라 나 혼자 헷갈렸던 것 같다. 그리고 40대 정도가 되면 호감이 없는 상대와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뒤늦게 생각났다. 이렇게 되니 왜 에프터를 못 받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날 너무 더워서 버스 타러 가는 길과 버스 내린 후 땀이 좀 난 거 같은데 혹시 땀냄새가 난 건 아닌지를 시작으로 그날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 보았는데 잘 모르겠다. 크게 말실수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사람이 듣기에 거슬리거나 안 맞다고 느껴지는 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건 그 사람밖에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해도 정답이 나올 수 없다. 그저 그와의 인연은 여기 까지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내가 그의 맘에 들었다면 거슬리는 점이 있더라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도 싫은 것도 아닌 어중된 상태에서 거슬리는 점을 발견했다면 바로 트리거로 작용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건 그뿐만 아니라 누구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는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요인이 생기지 않게 예의를 갖추며 최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상대가 호감도 비호감도 아닌 상황에서는 한 번 더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한 거라면 말짱 꽝이다. 솔직히 처음 만나서 시간의 대화로 상대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첫 만남의 승부수는 외모이다. 미남, 미녀를 찾기보다는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인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이건 전 세대가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들수록 그 폭이 넓어지긴 하지만 취향은 분명 있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가 확고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모가 호감이라면 너무 안 맞거나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의 말만 안 해도 대부분 다음 만남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괜찮다고 느낀 사람에게 거절당하니 소개팅에 대해 고찰해 보는 좋은 시간을 가지기는 개뿔... 나이가 들었어도 거절당하니 기분 나쁜 건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소개팅에서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고, 소개팅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좋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좋은 경험만 할 텐가? 다음번에는 꼭 좋은 결실을 맺어 보도록 하자!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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