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엘리아나 Dec 01. 2023

도서관에서 나의 미래를 보았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책 사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집에 책이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장의 한계를 느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곤 했다. 평일에는 도서관 가기가 어려워 주로 주말을 이용했는데 얼마 전 휴가 날 도서관을 갔다. 이전에는 대출할 책만 찾아서 바로 나가곤 했는데 그날은 여유롭게 자료실 안에서 이 책 저책을 봤다. 그러다 문득 주위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60세 이상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어르신들이 많은지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추론되는 이유가 있었다.


1. 은퇴 후 집에만 있기 모해서

남성 어르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보고 추론했다. 은퇴 후, 삼식이(은퇴 후 집에서 하루 세끼를 모두 먹는 남편)가 되면 대부분의 부인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낮동안 외출을 해야 하는 데 갈 곳이 마뜩지 않아서 공짜로 이용 가능한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2. 추위를 피하기 좋은 장소여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일정한 수입이 적거나 없는 어르신들에게 겨울철 난방비는 많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저녁 6시까지라도 춥지 않게 있을 수 있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반대로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기 좋은 장소가 된다.


3.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어르신들이라고 다 집에서 TV 보고 누워만 계시는 걸 좋아하시지 않는다. 우선 밖으로 나가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도서관에 오면 주로 책을 보지만 신문, 잡지 등 다양한 자료들이 많고 컴퓨터도 이용할 수가 있다. 또, 휴게 공간도 잘 되어 있어서 중간중간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 다른 어르신들과 교류가 가능해서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도서관 바깥 공간을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봄, 여름, 가을에는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쉬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도서관에 혼자 오지만 어르신들은 장기나 바둑을 함께 두거나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5. 진짜 책을 좋아해서

나도 책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 평일에는 퇴근 후 쉬기 바쁘고, 주말에는 외부 활동을 하거나 평일에 못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틈을 내어 읽기는 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새 책들은 매일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시간이 많아진 노년기에 그동안 못 읽었던 책들과 새로 나온 책들을 여유롭게 보는 것이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내가 봤던 어르신들은 모두 책, 신문 등 뭔가를 다 열심히 보고 계셨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은퇴는 먼 얘기만 같아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도서관의 어르신들 모습을 보니 미리 보는 은퇴 후 나의 모습 중 하나를 본 것 같았다. 사실 이전에도 어르신들은 많았었는데 내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 걸 보니 이제 진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구체적으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온 듯하다.

한 편으로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르신들의 상황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노년까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신체활동이 자유로운 건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니 노년의 시간 중 일부를 국립도서관에서 보내는 것도 꽤 괜찮아 보인다.

그렇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고급 실버타운의 사설 도서관에서 보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급 실버타운, 지금부터 준비하면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