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보고 싶었던 전시회 티켓이 운 좋게 당첨되었다.빛의 시어터라는 몰입형 예술 전시로 살바도르 달리와 가우디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접목한 전시회였다. 작년에 비슷한 컨셉의 전시인 아르떼 뮤지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빛의 시어터도 기대가 됐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 전시 장소인 워커힐 호텔 내에 위치한 빛의 시어터로 향했다. 처음에는 친구와 가려고 했는데 미디어 아트를 접해본 적 없는 엄마가 보면 좋을 거 같아 함께 갔다. 빛의 시어터에 도착하니 토요일 오후치고 매우 한산했다. 오늘 기온이 급강해서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룰루랄라 입구 쪽에 있는 포토존에서 여유롭게 사진을 찍고 매표소를 찾던 중 예상치 못한 안내판을 발견했다.
휴관이라니...
전시회 무료 티켓은 11월 30일까지이다.
일요일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올 수 없고, 평일에는 퇴근 시간 전에 입장이 마감된다.
망했다.
기대했던 전시회이고 엄마까지 모시고 온 마당이라 민망함과 동시에 화가 났다. 혹시나 해서 당첨 안내를 찾아보니 휴관하는 날이 종종 있으니 휴관 날짜를 SNS로 미리 확인하라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당첨돼서 좋아라만 했지 주의사항을 제대로 보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워커힐 호텔 안의 베이커리인 르 파사쥬에 들렀다. 예쁜 케이크들과 여러 종류의 빵을 구경하다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노아식빵을 집었다.
2년 전쯤 살 때는 8천 원이었던 거 같은데 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식빵을 만원이나 주고 사 먹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이거라도 사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너무 허무할 거 같아 사기로 했다. 이 와중에 T멤버십 10% 할인도 야무지게 받았다.
계산 후, 직원이 빵을 종이백에 포장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종이백이 손잡이가 달린 종이백을 말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일반 종이봉투였다. 손으로 들고 가기는 불편할 것 같아 종이 쇼핑백을 하나 구매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직원이 살짝 머뭇거리며 말했다.
종이 쇼핑백은 2천 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냥 달라고 할까 살짝 고민했는데 그건 내 머릿속의 생각일 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네? 종이 쇼핑백이 2천 원이라고요? 하하하하"
그 직원은 알았던 것이다.
내가 종이 쇼핑백이 2천 원이라고 하면 놀랄 거라는 것을. 그리고 안 살 거라는 것도...
2천 원이큰돈은 아니지만 집에 남아도는 종이 쇼핑백을 사기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종이봉투를 들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직원이 말을 이었다. 비닐백은 100원이라고.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비닐백을 구매했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빛의 시어터 휴관이 가장 충격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종이백 2천 원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아직 충격받을 수 있는 거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2차 충격을 받으며 구매했던 노아식빵이었다. 3차 충격은 없길 바라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빵 포장을 풀었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먹던 식빵을 처음으로 긴장하며 맛보았고, 우려와 달리 식빵은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맛있고 부드러운 식빵에 견과류의 고소함과 타피오카의 쫄깃함이 더해지면서 일품의 맛을 만들어 냈다. 엄마도 최근 몇 년 간 먹어본 빵 중 가장 맛있다며 극찬하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끝이 좋으면 다 좋아요(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제목처럼 마무리가 행복하니 전시회 티켓을 날려서 속 쓰렸던 마음은 어느새 잊히고 꽤 괜찮은 하루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