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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Dec 27. 2023

결혼정보회사에 이런 사람이?

한동안 미차감 만남만 이어오다 오랜만에 차감 만남을 가졌다. 나보다 3살 많은 회사원으로 이전 만남들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버스에 탄 후,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날이 많이 추워져서 후다닥 버스 정류장까지 오느라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확인해 보니 오늘 만나기로 한 남자의 전화였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느낌의 실체를 바로 확인해야 했다. 조용한 버스 안이라서 전화대신 문자를 보내니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는 답장이 왔다. 사정이 생겨 늦을 수 있다. 그렇지만 초면인데 미안하다는 사과는 해야 하지 않을까? 사과가 없다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우선 잊고 만남 장소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니 연말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카페로 옮겨 남은 자리에 겨우 앉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이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마음을 안정시키며 그를 기다렸다.

한참 후, 도착한 그는 나를 보자 부처님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순간 늦은 건 '그'가 아닌 '나'이며 늦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미소였다. 여전히 늦은 약속시간에 대한 사과가 없어서 의아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초반에 유쾌하지 않았던 상황과 달리 그와의 대화는 물 흐르듯이 잘 이어졌다. 내 이야기에 경청하며 본인의 이야기도 곧잘 했으며 2시간 가까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헤어질 무렵에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볼 영화까지 정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점은 착실한 스타일이며 가정적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그 역시 가정적인 남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첫 만남이라서 얼마나 맞을지 모르겠지만 대략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살짝 미심쩍은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내 질문에 대한 대답들과 대화 내용이 너무 모범 답안 같다는 것이었다. 사람 자체가 모범적일 수 있지만 듣고 싶은 말을 골라서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연륜이 쌓이다 보니 사람을 보이는 그대로만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아직 판단할 수 없으니 만나면서 파악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그의 연락은 없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중 이렇게 구체적으로 약속을 정해놓고 연락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상했다. 주선자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데 굳이 애프터를 신청하고 연락이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며칠 후, 매니저에게 만남 피드백 연락이 와서 상황을 얘기하니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과 그다음 날까지도 그와 매니저 모두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오면 만나볼 의사는 있지만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니어서 그냥 넘기기로 했는데 며칠 후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남자의 매니저에게 내가 마음에 들었으며 연락해서 만나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당황했지만 연락이 오면 만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그날도 그다음 날에도 그의 연락은 없었다.

진짜 이 사람 뭐지?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사과가 없어서 예의가 없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선한 인상에 얘기는 곧잘 통하는 반전과 함께 다음 만남을 기약했지만 연락이 없는 사람.

결혼정보회사뿐 아니라 이런 남자 자체를 처음 만나본 것 같다. 이렇게 나의 만남 횟수의 절반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건가?


그런데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 사람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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