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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Feb 07. 2024

오프터는 대전 빵집에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대전 빵집 성심당을 드디어 그와 함께 가게 되었다. 성심당은 재작년즈음부터 가보고 싶어서 친구와 가기로 했는데 둘 다 뚜벅이어서 빵 사러 KTX까지 타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다 번번이 무산되곤 했었다.

그런데 가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대전까지 가게 되다니 이래서 연애를 해야 하는 걸까?

케이크 하나 사러 대전까지 간다는 게 어찌 보면 시간과 비용면에서는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원래 연애 자체가 정량적인 효용성보다는 정성적인 감정의 비중이 훨씬 크며 연애 초기에는 더 그렇다. 이번 대전행은 먹어보고 싶었던 케이크를 드디어 먹어보게 됐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었지만 처음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할 그를 좀 더 알아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대전까지 가기 위해 이른 아침에 그를 만나 처음으로 그의 차에 탔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그를 위해 나도 나름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만든 모닝빵 샌드위치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처음으로 그의 차에 탔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해서 어색한 순간들이 오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대화는 끊김 없이 잘 이어졌고, 가끔 공백이 생길 때는 음악이 메꾸어 주었다. 어느덧 성심당에 도착한 우리는 한참 줄을 선 끝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딸기 케이크인 '딸기 시루'와 다른 빵들을 살 수 있었다.

천천히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난리통이어서 후다닥 계산을 한 뒤 점심을 먹으러 칼국수 맛집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성심당에서 끝난 줄 알았던 줄 서기는 칼국수집에서도 이어졌고, 40분쯤 기다린 끝에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줄 서기에 지친 나는 맛없으면 화가 날 것 같았는데 칼국수는 정말 맛있었고, 양까지 푸짐해서 배부르게 잘 먹었다.

배가 부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비가 와서 실내로 이동을 해야 했다.


우리는 대전에서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대전 엑스포스카이점 스타벅스를 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인기가 많은 곳인데 비가 와서 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사람이 많아서 앉을 곳이 없었다.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연달아 긴 줄을 서느라 지쳐있었다. 다행히 한 층 위에 폴바셋이 있어서 폴바셋으로 이동했고, 빈자리들이 있었다. 우선 아무 빈자리에 앉았다 창가 자리가 비어서 후다닥 옮겨 앉았는데 아쉽게도 비가 와서 전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쉬움을 딸기 아이스크림 라떼가 달래주었다.

딸기 본연의 상큼함과 과하지 않은 달콤함으로 지쳤던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즐겁게 수다를 떨다 그에게 아쉬운 한 가지인 연락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제가 연락 얘기를 계속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음'이에요. 우리가 서로를 하루 종일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하루 중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보통 서로가 생각날 때 연락을 하는 거죠. 그래서 아직도 OO 씨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연락 안 되는 부분을 포기하면 마음 편하겠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 잘 챙겼는지 걱정되고, 저도 걱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에 대한 마음이 어때요?"

심각한 표정이 된 그가 대답했다.

"당연히 마음은 있는데 연락하는 게 아직은 어색해요. 제가 더 노력할게요. OO 씨와 사귀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이전에도 한 번 비슷한 대화를 했었는데 그때와 워딩이 조금 달라졌다. 나를 계속 만나고 싶다고까지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나에 대한 마음이 커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그가 연락에 대해 더 이상 신경안 쓰게 할지 아직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성심당을 바로 데리고 와줬으니까. 이때만 잠깐 분위기가 무거웠고 이내 다시 재미있는 대화를 이어나가다 해가 무렵, 서울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제 말 편하게 할까?"

그렇게 우리의 진짜 연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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