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엘리아나 Jan 19. 2024

사프터 할 결심

세 번째 만남으로 우린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정식으로 고백받은 건 아니었지만 나를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고, 나도 좀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 그날 이후 또다시 연락이 없다.

참으로 한결같다. 사람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하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하루를 넘어 이틀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그의 스타일대로 연락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좀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그는 더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에 잘 연락하다 갑자기 툭 끊긴 거라면 후자라고 바로 결론 내렸을 텐데 약속 잡을 때만 연락을 하던 사람이라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함께 가기로 한 대전의 빵집이 생각났다.

헤어지더라도 그 빵집은 같이 가고 싶어!

유치하지만 그 빵집의 시그니처인 딸기 케이크를 꼭 먹어보고 싶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그 와중에 빵집까지 아주 난리가 났다.


연락 안 온 지 3일째가 되자 더 이상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기가 힘들어져서 그에게 북채를 넘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맘 편히 퇴근 후에 연락하기로 하고, 어떻게 문자를 보낼지 생각해 봤다.

그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안부 문자를 보낼까? 아니면 단도직입적으로 대전 빵집에 언제 갈 거냐고 물어볼까? 고민이 됐다.

신기하게도 고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문자가 왔다. 역시나 가벼운 안부 인사를 시작으로 주말에 일이 있어서 금요일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그의 문자를 보니 나의 고민을 빨리 끝내줬다는 마음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금요일 저녁 만남을 확정 지었다. 저녁에 만나니 대전 빵집은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문득 얼마 전 친구가 추천해 준 광화문 빛 축제가 생각나서 함께 가기로 했다.


약속 날,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빛 축제를 보러 이동했다. 식사하기 전보다 많이 싸늘해진 날씨가 느껴지니 엉뚱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계속 바깥에 있어야 하니까 추운 날씨를 핑계로 손잡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손잡는 게 가슴 떨리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 손을 잡는다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 둘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물리적으로 처음 느끼게 되는 순간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내민 건 손만이 아니었다. 그의 손 아래에 숨겨져 있던 핫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것도 어찌나 조심스럽게 건네주던지 손끝하나 닿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핫팩 덕분에 따뜻하게 빛 축제를 고, 청계천까지 걸은 후 카페에 갔다.

광화문 빛초롱 축제

이번 만남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참 편하고 얘기가 잘 통했다. 그래서 연락이 잘 안 되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계속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몇 시간을 함께 이야기해도 끊기지 않고, 즐겁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연락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는 중요한 부분이다.

연락은 하루아침에 고칠 수 없을 것 같으니 조금씩 늘려가는 방향으로 이끌어 보기로 했다.


다음 만남에는 그렇게 가보고 싶어 했던 대전 빵집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한결같은 그는 오늘도 연락이 없다. 그와 나, 대전 빵집에 함께 갈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되뇐다.

헤어지더라도 그 빵집은 같이 가고 싶어!
매거진의 이전글 삼프터의 행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