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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Dec 06. 2024

결혼정보회사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한 여름이 다가올 무렵 이별을 했는데 어느새 한 계절이 지나 겨울이 왔다. 이별 후 한 달은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다렸던 것 같다.

이별은 이미 기정사실이었지만 마무리라도 잘 짓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지만 끝내 그의 연락은 없었다.

이후에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럭저럭 잘 지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결혼정보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매니저는 인사를 하자마자 결혼 날짜는 잡았는지 물어봤다. 만난 지 10개월이 넘는 시점이결혼정보회사에서는 당연한 질문이기도 했다.

헤어졌다고 말하니 바로 연락하지 않았냐며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렇다. 결혼정보회사는 매칭에 매우 충실한 곳이다.

나도 이제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서 다시 충실할 때가 왔다. 연락받은 김에 활동 재개 의사를 밝혔고, 얼마 후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대는 나보다 2살 많은 직장인이었고, 인상이 나쁘지 않아서 수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 안내 메일이 왔다. 여느 때처럼 토요일 오후, 집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의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그리고 약속 당일, 대략 주소만 확인했던 정확한 약속 장소를 지도로 찾아보았다.

앗... 이곳은?

그곳은 전 남자친구와 처음 만났던 그 카페였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잡아주는 장소가 거기서 거기였지만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장소라는 것이 좋은 시그널인지 나쁜 시그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시그널이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버스에 타자마자 교통이 막히는 나쁜 시그널이 나타났다. 다행히 먼 거리가 아니라서 5분 정도 늦을 것 같았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날 때는 대부분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 때문에 조금 늦을 거 같다고 양해를 구하는 문자를 보냈다. 상대방은 흔쾌히 괜찮다는 답장을 보냈고, 나는 예상대로 딱 5분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막상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그가 없었다. 

혹시 내가 그를 못 찾는 건가 싶어 전화를 했더니 그는 약속 장소를 헤매는 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인데?

그렇지만 초행길이면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며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 줬고, 얼마 후 그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깔끔한 옷차림을 한 날씬한 체형을 가진 남자였다. 커피를 주문한 후 시작한 대화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내가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대부분의 남자들은 오랜 사회 경험으로 인해 초반의 대화는 순조롭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고향과 사는 지역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전혀 생각지 못한 복병이 튀어나왔다.

그는 가족 간의 심각한 불화가 있는 사람이었다. 명절에도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으며 큰 누나와는 절연한 상태이고, 작은 누나와도 거의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있었지만 그가 너무 독한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시댁 스트레스가 거의 없을 거라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한테도 저러는데 남인 나와 불화가 생기면 얼마나 독하게 굴지 미리 겁이 났다. 너무 앞선 생각이지만 말이다.


다행히 다음 주제인 재테크로 넘어가면서 대화는 곧 잘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이제 집에 가고 싶어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재테크부터 흥미로운 대화가 잘 이어지고 있는데 계속 집에 가고 싶다.

그러다 진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아이에 대한 생각 차이였다. 첫 만남에 무슨 아이 얘기냐 하겠지만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났고, 40대는 아이를 원하면 하루가 급한 나이이다.

그래서 종종 첫 만남에서 나오는 주제이기도 했다. 

그는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다. 시험관은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고, 실패하면 입양도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남자 입양 이야기를 꺼낸 남자는 처음이었다.

나도 아이를 원하지만 안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안 생긴다면 둘이 잘 지내볼 생각이지 입양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그는 입양은 아내와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했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이기에 쉽게 굽히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집에 가야겠다. 

헤어질 타이밍을 엿보다 그의 커피가 바닥을 보이자마자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다 마셨으면 일어날까요?"

아!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 

헤어지는 길에 그는 오늘 즐거웠다고 말했다.

상대 남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보통 에프터를 신청하는 경우는 헤어질 때 다음 만남을 기약하거나 넌지시 언질을 준다. 

오늘 즐거웠다는 말은 다음 즐거움은 없다는 뜻이다.


이별 후 첫 만남이라 많이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꽤 잘 해낸 것 같다.

비록 에프터는 못 받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올해 안에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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