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엘리아나 Jun 28. 2020

그린라이트의 변천사

그린라이트란 신호등의 초록불을 말하며 허가, 승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가 2013년부터 방영된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성 간의 강한 호감을 의미하는 관용어로 사용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잘 안 쓰이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JTBC 마녀사냥


20대 초반 내가 처음 느꼈던 그린라이트는 이성과 만남 이후의 '연락'이었다. 나에게 호감이 있으면 당일이던 며칠 후던 연락이 왔고, 호감이 없을 때는 아예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연락의 유무로 그린라이트를 판단했었다.

시간이 흘러, 30대 초반이 되면서 그린라이트에 변화가 생겼다. 만남 후의 연락이 꼭 그린라이트를 뜻하지 않았다. 연락이 와서 다음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연락이 마지막이 되는 경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의상 마지막까지 매너를 지키려고 하는 연락들이었다.

몇 번 이런 경우를 겪어보니 다시 그린라이트를 찾아야 했다.


그다음 내가 찾은 그린라이트는 '대화에 대한 적극성과 진짜 미소'였다.

소개팅이나 선자리에서는 서로 예의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재미없더라도 웃고, 할 얘기가 없더라도 쥐어짜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30대가 되면 20대 때 보다 다양한 사회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호감이 없어도 대화를 유도하거나 미소를 짓는 게 좀 더 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미소와 함께 대화가 잘 이어지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짐작했던 이전과 달리 좀 더 세심히 관찰하여 그린라이트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새로 찾은 그린라이트의 예상은 잘 맞았고, 이제 확실한 그린라이트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대화도 적극적이었고, 진심으로 서로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래도 30대가 되면 결혼을 염두하게 돼서 좀 더 신중해진다. 그래서 그날의 만남이 즐거웠다고 하더라도 만남을 이어가는 건 다른 문제가 된다.

이제 만남 후의 생각까지 예상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그린라이트가 되었다.


그 후 내가 다시 찾은 그린라이트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말들'이었다.

그린라이트 예상이 틀렸던 만남을 생각해보니 현재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결혼 같은 거창한 미래가 아닌 다음 만남에 어떤 음식을 먹자거나 어디를 가자거나 하는 가깝고, 일상적인 미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최근 이 그린라이트도 깨져버렸다.

분명 위의 예시들을 모두 충족했는데도 말이다.

다정한 말들과 눈빛, 행동 그리고 다음 주에 만나자는 이야기까지 했는데 만남 3일 후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1. 나를 만난 후 다른 사람과 소개팅했는데 더 마음에 들었다.
2. 전 여자 친구와 정리가 안된 상태였는데 그 사이 재회했다.
3. 어장 관리이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떤 이유라도 중요하지 않다. 결론은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1. 내가 정말 맘에 들었다면 소개팅을 안 했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면 한 번 만나고 끝냈을 것이다.
2. 1번과 같은 이유로 재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어장관리하는 사람과는 애초에 시작도 안 한 게 다행이다.



내가 요즘 연애 추세를 못 쫓아가서 그런 건지 이제 그린라이트를 못 찾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린라이트를 찾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만남 자체에 더 집중하여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와 잘 맞을지를 파악하여 잘 맞을 거 같으면 환한 미소와 리액션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다음 만남을 유도해보겠다. 그렇게 했는데도 다음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쿨하게 보내주련다. 


 


작가의 이전글 미혼과 비혼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