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공방전> 속 돈의 양면성

황금만능주의. '돈'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며 삶의 모든 관계에 있어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이다. 사유 재산을 통한 이윤 획득이 주된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유서 깊은 개념이다. 그만큼 오늘날 돈은 생존 요건의 필수 수단이자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돈이 많을수록 일상에서 누리는 선택의 자유가 폭넓게 형성되고 생계 보장에 유리하다. 이러한 논리에 놓인 현대인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며 돈을 좇는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 안에서 돈을 맹목적으로 좇아 발생한 자기 파괴의 문제는 집단 갈등이나 범죄의 문제로 퍼지기도 한다. 결국 물질 구축에 필수적인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만큼 양면성이 짙은 경제적 교환의 매개체다.


다다익선과 과유불급 사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등재된 돈의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하는 물건'이라 서술한다. 여기서 물건이란 일정한 형체를 갖춘 물질적 대상을 말하는데, 이를 견주어 보아 돈은 일부의 목적을 위한 삶의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드리우는 현대에서 돈은 단순한 수단의 의미를 넘어선 삶의 목적이자 그 자체로 추구하는 존재로 나아간다.


앞서 이야기했듯 돈은 생계에 무수한 영향을 미친다. 먹고살기 충분한 돈은 의식주가 기본인 경제적 안정에 이바지하며 더욱 풍요로운 삶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이 외에 교육, 취미, 문화생활 등 다양한 분야를 선택하고 소비할 기회도 훨씬 넓어진다. 나아가 돈을 통해 축적한 부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공헌하기도 한다. 이처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돈은 우리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로, 적정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이끌며 안정감과 만족감을 높이는 보호막이다. 돈을 소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단정 짓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불행은 막는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주어진 다다익선이 과도한 욕망과 결합한 과유불급으로 변질되며 최소한의 불행마저 깨뜨리는 것 또한 돈이다. 자신이 가진 좋은 물질은 끝도 없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곧 과시, 존경, 권력이기에 돈을 향한 만족감에 있어 한도가 없다. 개인이 설정한 한도를 깨뜨린다면 쾌락만을 추구하고 부패에 물들게 되는 자기 파괴와도 맞닥뜨린다. 이러한 속물성에 매몰되면 인간과 얽혀있는 모든 관계를 돈과 묶는 황금만능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돈이란 갈망하고도 경계해야 할 존재다.


"공방의 말 한마디면 무게가 황금 백근만 하다."

고려 숙종 7년에 구리로 제작된 해동통보. 겉의 동그란 부분이 '공(孔)', 안의 네모난 부분이 '방(方)'이다 [출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돈에 대한 관점과 경계는 과거 선조들의 글을 통해서도 두드러지는데, 대표적으로 고려 중기 문인 임춘(생몰년 미상)의 가전체 작품 <공방전(孔方傳)>이 있다. 여기서 가전(假傳)이란 사람이 아닌 것에 인격을 부여해, 일생의 행적을 기록하는 전기(傳記) 형식으로 전하는 글이다. 사적 지향이 강한 양식인 만큼 작자의 주관적 이념을 드러내는데 자유롭다. 제목에서 '공'은 구멍, '방'은 네모를 뜻하는데, 곧 동그란 엽전에 뚫린 네모난 구멍을 가진 자의 일대기를 뜻한다. 이 작품은 동일 작자의 '국순전(麴醇傳)'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가전 작품으로, 훗날 조봉묵, 김만진, 조규철 등 후세에 돈을 입전한 가전을 다루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야기는 공방의 집안 내력을 거슬러 시작한다. 조상은 수양산에 숨어 세상에 쓰인 일이 없었고, 아비 천(泉)은 주나라 대재(大宰)로서 나라 세금을 관장했다. 공방은 성질이 굳세 세상에 잘 드러나지 못하다 "긁고 빛을 갈면 자질이 드러날 것"이라는 관상쟁이의 말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변통을 잘 부리며 자기 이익에 욕심이 많았다.


한나라 때 정계에 진출한 뒤에는 백성을 상대로 한 푼의 이익이라도 다투면서도 쓸데없는 재물을 소중하게 만들었다. 이에 백성들은 농업 대신 상업에 매달리게 된다. 더불어 권세 있는 사람을 잘 섬겨 벼슬을 매매하기까지도 했다. 이처럼 조정을 망치고 백성을 해쳐 국가가 곤궁에 빠지게 이끈 그를 향해 사람들은 "말 한마디 무게가 황금 백근만 하다."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원제(元帝) 때 조정에서 쫓겨난 뒤 죽게 되지만, 그의 아들과 후손들이 나라의 씀씀이를 편하게 했다. 그러나 아들 또한 장물죄로 사형당한다. 이후 작가를 대변하는 사신(史臣)이 공방에 대한 비판과 폐지를 담은 경세관을 피력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결국 돈에 필요한 건 '적당히'라는 개념


작품은 돈이 등장한 역사와 인간 생활에 미치는 이득과 폐해를 엽전의 의인화를 통해 보여준다. 공방이 세상에 드리우자 경제생활은 간편해지고 시장은 활발해진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를 책임지는 창고가 텅 비고, 물건값을 낮추어 곡식을 천하게 해 백성들의 농사를 방해하고, 벼슬을 매매하며 뇌물은 늘어나고, 청년들은 끼리끼리 놀음을 즐기게 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등장한 돈이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킴을 암시한 작가 임춘은 이야기 말미에 돈의 폐해를 직접적으로 지적하며 폐지를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는 문신 신분인 그가 무신정변으로 타지를 떠돌고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 불우한 처지에서 발견한 돈의 교활함에서 발현됐을 것이다.


그러나 염원과 달리, 돈은 오늘날 단순히 물물교환의 영역을 뛰어넘어 다양한 가치를 교환하는 막강한 존재로 거듭난다. 생명, 건강, 신뢰, 사랑 등의 정신적 가치를 제외한 물질을 살 수 있는 것은 교환 기능이 뚜렷한 돈밖에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쏟아낸 노동과 노력으로 돈을 생산하고, 물질을 소비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유의지와 행복을 실현한다. 동시에 자본의 위력을 실감하고 돈의 매력에 사로잡혀 유쾌함을 알아간다. 돈을 향한 열망은 집착으로 번지고, 그 집착은 서서히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킨다. 아마 임춘은 이를 염두에 두고 공방전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엽전이 돌던 고려의 화폐경제를 경계한 것은 한편으로 돈을 갈망했던 내적 갈등에 대한 방어기제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실제로 무신정변으로 집안이 몰락한 뒤 빈곤 생활을 몸소 경험했기에, 돈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폐해를 깨닫고 자신의 관점을 견고히 주장한 것이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결국 돈을 어떻게 생각하고, 추구하고, 사용하느냐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돈을 과도하게 갈망하는 점을 자각했을 때 물욕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지 아님, 위험을 간수하면서까지 나아갈지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필자의 의견을 피력하자면, 결국 돈은 정도에 알맞게, '적당히' 대해야 한다. 돈에는 휘발성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얻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그 돈을 사용하는 시간은 비례하지 않아 절제가 결여될수록 금방 소진되는 매개체다. 그러니 지나친 욕구 해소는 탕진과 빚의 관계가 반복되는 낭비성 소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 또한 돈의 개념에 무지하던 시절에는 돈을 우선시하고,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질에 과소비하며 만족감을 느꼈다. 그 만족감은 물질을 향한 욕망으로 번지며 더 부유한 환상을 갈망했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지인을 통해 필자와 동급생이었던 자가 도박에 빠져 빚에 허덕이다 개인회생에 들어갔다는 근황을 듣게 됐다. 이를 듣고 돈과 욕망을 결탁하는 것은 나락의 구렁텅이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깨달았던 경험이 생생히 기억난다. 아마 지인의 말이 아니었다면 필자는 지금도 돈의 양면성을 망각한 채 피폐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돈에는 소비량이 늘지만, 그로 인한 만족감은 점차 줄어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내재한다. 곧 돈과 행복의 관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시선으로 돈의 가치를 부여하는 만큼 그 의미도 각기 다르다. 그만큼 돈은 매력적이면서 강력하다. 그런데도 돈과 욕망이 결탁할수록 되돌리기 힘든 비극을 맞이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획득과 소비로 이루어진 돈의 값어치를 적당히 규정한다면 삶의 가치를 보호하고 환원해주는 보배로 이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모가 난 공방과 달리 빈틈없고 속이 꽉 찬 존재로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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