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생우진기> 속 끈기와 타협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인터넷이나 각종 TV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한 번쯤은 이 문구를 접해봤을 것이다. 실패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보자는 불굴의 의지가 담긴 이 문구는 줄여서 '중꺾마'로도 불린다. 이는 '누가 칼 들고 협박함?(누칼협)', 'OO 하면 그만이야' 등 조롱 혹은 혐오 섞인 부정적 밈(meme)이 활개 치는 시대에 긍정적인 내용으로 누구나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구의 유래는 '2022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 참여한 프로게이머 데프트(김혁규)의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당시 팀 DRX 주장이었던 그는 첫 본선 조별리그에서 패배한 후 쿠키뉴스와의 인터뷰 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는데, 이 부분을 인터뷰어 문대찬 기자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수정한 영상을 올렸다. 당시 DRX는 지난해 최하위 팀이었고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최하위 시드인 4번 시드로 겨우 참가한 만큼 우승 확률도 현저히 낮은 '언더도그(Underdog)'로 꼽혔다. 그런데 인터뷰 이후 DRX는 끈끈한 팀워크를 기반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영상 문구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재조명된다. 특히 10여 년 동안 우수한 기량을 유지하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나 월드 챔피언십 트로피를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했던 주장 데프트의 서사까지 더해지며 문구는 젊은 세대에게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그러다 이 문구가 세대를 아울러 전 국민에게 각인된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2022 카타르 월드컵'이다.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조별예선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펼치며 16강에 진출했다. 같은 조 우루과이와 승점, 골득실까지 같았으나 다득점 부문에서 우위를 점해 극적으로 진출한 만큼, 경기가 열린 도시명을 딴 '알라이얀의 기적'으로도 불린다. 이때 선수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이 화제를 일으켰다. 반드시 포르투갈을 잡고 우루과이 경기까지 지켜봐야 하던 역경을 이겨냈기에 문구가 상황에 맞는 명언으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 누구에게나 끈기와 희망을 함축하는 긍정적 의미로 다가가는 문구로 관통하며 유행하게 된 것이다.
거듭된 타협 앞에 의미가 무색해지는 '중꺾마'
필자는 이 문구를 마주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아야 각성할 수 있고, 그래야 무슨 일이든 이뤄낼 것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결심한 목표를 위해 이어나갈 '꾸준함'이 부족하면 그 의미는 무색하다는 점도 동시에 깨닫는다. 오랜 시간을 거쳐 쌓은 기량이 바탕이 돼야 실전에서도 추구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앞서 DRX는 패배의 원인을 끊임없이 분석하며 팀워크를 다진 끝에 우승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4년 동안 합을 맞춘 끝에 16강 진출을 이루어냈다. 결국 목표를 설정하면 다음을 계획하고 이를 나아갈 근면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문구는 필자에게 막상 어렵게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패'와 맞닥뜨려 드러나는 압박감이 성공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으로 변질하면서 필자를 타협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시를 말하자면 필자가 작년부터 스프레드시트 능력을 기르고자 준비하던 '컴퓨터활용능력 2급'이다.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다루어본 때라곤 초등학교 방과 후 시간 외엔 없어 기초부터 다시 쌓고자 1급이 아닌 2급을 준비했다. 시험은 객관식 문제로 구성된 필기와 실제 프로그램 바탕의 문제로 구성된 실기로 나뉜다. 필기는 이미 작년 7월에 합격을 받았지만 실기가 말썽이었다. 조건부 서식, 부분합, 피벗 테이블, 매크로, 차트 등 생소한 기능들만 가득했고 특히 함수 서식에서 암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렇게 2달 동안 동영상 강의와 기본서로 독학하며 9월 말에 실기를 응시했는데 합격선에서 6점 모자란 64점으로 불합격을 받았다. 간발의 차로 합격을 받지 못해 허무했지만 부족한 부분만 더 매듭지으면 된다고 다시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후의 문제는 다짐에만 머무르는 것이었다. 학업과 교내 활동을 병행하며 독학으로 준비하다 보니 서서히 공부에 임하려는 집중력과 시간이 줄면서 나태해지고, 결국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실기에 응시하지 않았다. 아예 수험일을 지정해 공부하려 해도 불합격을 받으면 시간과 돈만 낭비한다는 소심함에 손을 놔버린 적이 다수였다. 굴복의 타협을 거듭하며 발아된 합리화 앞에 최종 합격과 멀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신선에 오르기 위한 다짐 <최생우진기>
끈기와 타협의 줄다리기에 망설이는 필자와 달리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목표를 달성한 인물을 그린 고전 작품 있으니, 조선 중종 때 문신 신광한(1484~1555)의 <최생우진기>다. 작가 본인의 신변을 소재로 한 창작집 <기재기이>(企齋記異)에서 수록됐으며 강원도 두타산을 배경 삼은 전기소설이다. 참고로 두타산은 작가가 삼척부사 시절 자주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임영(강릉) 출신 ‘최생’은 속세를 등지고 경치를 찾아다니기 좋아하는 선비로 두타산 무주암에서 선사 '증공'과 기거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무도 끝까지 들어가지 못한 신산 '용두천'에 도달할 것을 다짐하며 증공에게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증공은 이미 아래에 웅덩이와 학이 있던 벼랑 끝 바위에서 나아가지 못한 뒤로부터 다시 오를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심이 없던 최생은 계속해서 만류하는 증공을 설득해 그곳으로 향한다. 증공이 언급한 벼랑 끝 바위에 도달한 그때, 최생이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순식간에 최생을 잃은 증공은 통곡하며 절로 돌아온 뒤 한동안 밤을 지새운다. 그런데 얼마 후 죽을 줄만 알았던 최생이 다시 증공의 절로 돌아오며 그동안의 체험을 고백한다.
어딘가에 떨어진 최생은 죽을 운명이라고 머뭇거리다 동굴을 발견한다. 동굴에 들어간 그는 수부(水府)를 발견하는데 곧 이곳은 자신이 열망하던 신선 세계였다. 그는 문지기와 하인의 안내로 잔치가 벌어지는 청령각(淸泠閣)에서 선계의 왕과 동선·도선·산선을 만난다. 신선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던 그는 자신도 신선이 되기를 청한다. 그러자 동선이 수명을 늘려주는 선약을 건네 10년 후 봉래(蓬萊)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면서 욕심에 눈멀어 단지 신선약을 먹으면 수명만 단축함을 염려했다. 이를 끝으로 학을 타고 현세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최생은 증공에게 일화를 밝힌 뒤로는 약초를 캐며 살다 생사를 알 수 없게 됐고, 증공은 이 일화를 무주암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이상적인 최생, 현실적인 증공
작품 제목의 뜻이 '최생이라는 성을 가진 선비가 참된 세계를 만난 이야기' 답게 신선을 향한 최생의 여정이 담겼다. '용두천'이라는 이상 세계로 나아가려는 최생의 긍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연상시킨다. 특히 그의 진면목은 벼랑 아래로 추락했을 때 발휘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동굴 앞에서도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죽더라도 굴 속에서 죽어야겠다'며 힘차게 발을 휘젓는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수부 궁궐에 도달했지만 그 앞에는 이무기 머리, 자라 등짝, 상어의 몸을 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다. 곧 이 문지기들은 그에게 목표 달성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자 목숨을 건 최후의 도전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큰 소리로 “너희 왕을 만나러 왔다”라고 내지르며 문지기들의 기세를 수그러들게 했으며 기어코 하인의 안내로 왕과 신선들을 만난다. 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탐색했던 그는 유감없이 발휘한 용기 덕분에 선계에 도달하는 보상을 얻게 된다.
다만 최생과 더불어 살펴봐야 할 인물은 선사 증공이다. 그는 최생처럼 이상 세계인 선계에 가고픈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최생 이전에 이미 선계로 향하는 바위 앞까지 섰으나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경직되는 공포심으로 그 너머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 이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최생처럼 돌파구를 탐색하며 시도하는 치열함보단 현실에 안주하는 편안함에 만족하 살아가고 있었다. 결말에서 늙도록 무주암 사람들에게 일화를 전해주었다는 부분은 한편으로 수양과 도전이 부족했던 자기의 후회를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즉, 이상적 모범인 최생과 극명한 대비를 드러내는 현실적 인물이다. 추가로 그의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면모에 대한 간접적인 유추가 가능한데, 증은 '증거 證', 공은 '빈 空'으로 '가짜를 증명하는 자'라는 뜻이다. 만약 작품을 읽기 전 뜻을 먼저 해석하고 이야기를 읽을수록 의미가 더 와닿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끝까지 굴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최생보다 오히려 편안함에 안주하는 증공이 더 현실적으로 공감이 가는 영향이 있다. 이는 곧 작가가 현실과 타협하는 '우리'의 모습을 현실세계를 선호하는 증공으로 압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로 대표되는 보편적 일상의 삶을 드러내면서도 최생의 선계체험을 듣는 증공의 입장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로써 독자에게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을 인지하고 자신만의 이상을 위한 다음으로 나아갈 것을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최생과 증공을 통해 독자에게 삶을 회고하고 성찰하는 끈기를 강조한 작품의 주제는 오늘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최생처럼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
작년 전공 강의에서 이 작품을 배웠을 때는 단순히 생소했던 작품을 알아가고 배워간다는 느낌만 들었었다. 그러나 목표를 내버려 두고 현실의 벽과 타협한 지금에서야 다시 읽어보면 필자에게 반성을 유도한다. 이렇게 보면 최생은 흡사 운명에 도전하고 스스로 진실을 추구하는 '위험하게 살기'를 주장한 니체를 보는 듯했다.
작품 속 '벼랑 끝 바위'와 '문지기'처럼 우리 앞에 선 낭패의 벽은 수없이 존재하고 또 버틸 것이다. 그러나 깨뜨릴 방법을 강구하는 건 나 자신이다. 실패에 있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방법을 수정한 다음 다시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 결국 '중꺾마'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이고도 유일한 전제다.
필자는 다시 본격적으로 컴퓨터활용능력 2급 실기에 도전해 보고자 이번 6월 학교에서 진행하는 강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독학은 아무래도 나태해지기 쉽고 어떻게 왜 틀렸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어 이번에는 대면 강의를 수강하게 됐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목표에 망설인다면 행위의 결과에만 주목하지 말자. 결과를 위해선 행위의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노력이 더 큰 결실로 돌아올 것이다. 목표를 향해 마음을 다잡았다면 최생처럼 앞으로 나아갈 용기만 남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