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관상쟁이> 속 관념 깨기
지난달, 학교에 소속된 학생상담센터의 심리 프로그램을 수강했었다. 총 3회차에 걸쳐 심리유형을 탐색하고 이에 대한 고민을 참여자들과 공유했던 프로그램으로, 마지막 회차에서 본인을 향한 '전표'를 탐색하는 활동이 있었다. 곧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타인의 시선을 통해 얼떨결에 새겨진 꼬리표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타인에게 들었던 무수한 말들을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T 같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T는 MBTI 검사에서 타인의 감정을 중시하는 F와 달리 객관적인 문제해결에 중시하는 사고형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감정보다는 현실적이고 쌀쌀하다는 뜻이다. 필자는 앞에 놓인 용지에 'T 같다'를 써놓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대체 MBTI가 뭐길래......'
혹시 MBTI가 어떻게 돼요?
MBTI란 모녀 사이였던 소설가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바탕으로 고안한 자기 보고형 성격 유형 검사다. 태도 지표인 E(외향)-I(내향)과 J(인식)-P(판단), 기능 지표 S(감각)-N(직관)과 T(사고)-F(감정)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를 밝혀 4개의 선호 문자로 구성된 유형을 알려준다. 여기에 부차적으로 신경성 지표 A(자기 확신)와 T(민감)를 더해 4개의 문자 뒤에 붙임표로 연결하기도 한다. 그렇게 검사 결과로 나타나는 성격 유형은 모두 16가지다. 필자도 2년 전에 재미로 검사를 해봤는데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외우고 다니지는 않았다. I인 것만은 기억난다.
MBTI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나의 유행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MBTI 유형을 물어보는 것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관례 중 하나이다. 만약 궁합이 같거나 비슷하다면 서로 공감을 나누고, 다르다면 자신과 다른 유형을 이해하며 대화의 물꼬를 틀어준다. 이러한 MBTI는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의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간혹 취업 시장에서 지원자의 성격이나 장점을 알 수 있도록 채용 지원서에 MBTI 관련 항목을 제시하거나 검사지 제출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지원자가 취업에 유리한 성격에 맞춰 속이는 일도 허다하다.
필자는 MBTI에 대해 개인과 상대방을 이해하는 좋은 수단으로 생각하며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무조건 맹신해 개인과 상대방을 MBTI의 틀에 맞춰 판단하려는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T 같다'라는 말도 어떤 문제가 있으면, 듣는 상대방과 친분이 있더라도 이성적으로 답변했을 때 종종 듣던 말이었다. 이에 사람들 사이 공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는 말이 뒤따라오기도 했다. 친분과 상관없이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인데, 이것이 오히려 공감 방식을 부정당하는 것으로 확장되니 듣기 거북했다.
이처럼 상대방의 성격과 행동 방식을 유추하고 거론할 때 MBTI에서 제시된 성향과 일치하면 확증 편향으로 인한 편견이 두드러진다. 이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성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바넘 효과'의 문제로 나아간다. MBTI는 기본적으로 특정 지표에서 하나만 선택하는 구조라 한 사람의 성격을 구분된 틀에 가둘 수 있다. 그래서 상대가 특정 유형을 가졌다면 무조건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재단하며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항상 반대로 말하는 이상한 관상쟁이
오늘날 MBTI로 성격을 유추한다면, 과거에는 '관상'이 있었다. 사람의 용모를 보고 성격, 운명, 수명을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상의 체계적인 시작은 추정이지만 중국의 관상학이 수입된 7세기 초 신라 때로 둔다. 당시 승려들이 불교 선종을 창시한 달마대사의 상법을 받아 고관대작들의 관상을 보고 미래를 점쳤다고 한다. 관상에 관해서는 고려 말 승려 혜징이 이성계의 군왕이 될 것을, 조선 초 영통사의 도승이 한명회에게 재상이 될 것을 예언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로써 관상은 당시 선조들 사이 유행하는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관상 보는 법이 특이한 관상쟁이의 이야기가 담긴 고전 수필이 있는데, 고려 고종 때 문인 '이규보'의 <이상한 관상쟁이>다. 작가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이 작품은 어느 날 나타난 이상한 관상쟁이를 둘러싼 일화가 주된 내용이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등장한 관상쟁이는 일반적인 관상법이 아닌 특이한 방법으로 관상을 봐주며 사람들에게 '이상한 관상쟁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 특이한 방법은 사람의 용모와 동정을 보이는 대로가 아닌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부귀하면서 살집 있는 사람에게 '몹시 야위고 천한 사람이 될 것', 빈천하면서 몸이 마른 사람에게 '살찌고 귀한 사람이 될 것', 눈이 먼 사람에게 '눈이 밝다', 민첩해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절름발이라 걷지 못할 것', 얼굴이 예쁜 사람에게 '아름답되 추하다', 인자한 사람에게 '만인을 슬프게 할 것', 잔혹한 사람에게 '만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것'이라는 식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내몬다.
이와 달리 그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던 '나(작가)'는 그를 찾아가 왜 특이하게 관상을 보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관상쟁이는 앞서 관상을 봐주었던 사람들을 두고 설명한다. 부귀하면서 살집 있는 사람은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에 죄를 짓고 쫓겨날 신세', 빈천하면서 몸이 마른 사람은 '겸손과 반성의 태도로 끝내 부를 얻게 될 신세', 눈이 먼 사람은 '미혹에서 벗어나 몸을 보전하고 욕심을 멀리할 신세', 민첩해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용맹함에 평범한 사람을 깔보다 자객이나 도적의 우두머리가 될 신세', 얼굴이 예쁜 사람은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자에게는 고귀하되 정직하고 순박한 자에게는 추한 신세', 인자한 사람은 '그가 죽으면 만인이 몰려와 마음 아파할 신세', 잔혹한 사람은 '그가 죽으면 만인이 몰려와 마음 기뻐할 신세'라고 말한다.
관상쟁이의 말을 들은 '나'는 그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거나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겠다며 극찬을 표한다. 그러면서 '낯빛이나 살피고 생김새로 판단해 귀티가 나는 자를 치켜세우고, 곡해를 일삼고 뻔한 상식만 늘어놓고 혼자 신통하고 영험하다 떠벌리는 자와는 견줄 수가 없다'라며 소감을 마친다.
인생의 이면을 바라보려던 '진정한 관상쟁이'
이 작품은 이상한 관상쟁이를 통해 단순히 관상을 보는 행위를 넘어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나아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관상은 사람의 용모와 동정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예측'만 가능할 뿐 '확언'은 불가능하다. 일반인이나 평범한 관상쟁이라면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을 갖고 기본적인 관상 관념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상한 관상쟁이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정반대로 해석한다. 이를 두고 '나'로 대변되는 작가 이규보는 그가 더 큰 차원에서 관상의 진실을 인생에 적용하는 자라고 보았다. 곧 그는 겉으로 보이는 낯빛이나 생김새로 사람의 인생을 재단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인생의 법칙으로 운명을 개척하고 이끌어가도록 관념을 깨뜨리고 이면을 바라보려는 '진정한 관상쟁이'라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따라서 작품이 전달하려는 주제는 대상을 바라볼 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유연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관상쟁이가 내놓은 메시지는 MBTI로 상대를 쉽게 판단하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선호 경향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MBTI와 용모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관상의 요소와 법칙은 차이가 있겠지만, '겉모습'을 보고 상대방의 성격을 유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는 용모의 특징을 통해 상대방을 판단했다면 현재에는 8가지로 이루어진 성향에 견주어 상대방을 판단한다. 그 특징에 의존할수록 상대방을 한 편으로만 이해하고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을 가르려는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이 선택적 성향에 비롯된 성급한 일반화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써, 상대방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낙인을 무수히 찍어낼 뿐이다.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구분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사람은 근본적으로 유형을 구별하기 힘든 얽히고설킨 존재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극단적으로 한 사람을 설명하기에는 여러 방면의 다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MBTI를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모든 사람은 E(외향)-I(내향), J(인식)-P(판단), S(감각)-N(직관), T(사고)-F(감정)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출된 4개의 영역은 사람마다 어느 쪽을 더 선호하고 편한지 우위를 알려줄 뿐이지, 무조건 이것들만을 선호하고 행동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T 성향을 띠더라도 같은 사람이기에 공감을 못 한다는 법은 없는 만큼, 사람의 성격에는 제시된 8가지 성향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화 기관에서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 본래 MBTI 유형과 다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내향적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당당하게 대화해야 할 때가 있고, 평소 계획을 짜지 않아도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을 위해 꼼꼼한 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감정에 충실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이성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도 있다. 곧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회화 과정에 맞춰 반대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MBTI는 사람의 심리상태, 사회화, 지위와 주변 환경의 영향에 유형이 쉽게 변하는 만큼 사람의 고유한 성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앞서 우리나라 관상에 큰 영향을 끼친 달마대사가 관상학을 정립한 이유를 세밀히 살펴보면 단순히 용모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이 용모고 그 마음에 따라 운명이 달렸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결국 MBTI는 상대방을 낙인찍는 수단이 아닌 자신과 상대방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소통의 수단이다. 결과만으로 개인이나 상대방을 단편적으로 규정하면 오히려 특정 유형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나타난다. 여기에 얽매여 개선을 거부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적 모습만을 기대하는 사고를 합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 개성을 가진 존재이고 성격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MBTI에 맞춰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기보단 우선 직접 마주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관상쟁이처럼 상대방만의 참모습을 충분히 이해하고 MBTI의 고정된 틀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