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

<원이엄마>와 월영교

지난 3일 친구와 함께 안동 월영교를 다녀왔다. 다음주까지 끝내야 할 창작 과제를 집에서 하려니 게으름만 피울 것 같아 마침 같은 강의를 듣는 친구와 나가기로 한 것이 계기였다. 어디를 갈지 논의하다 택시로 20분 내 도착하고 과제로 얻은 피로를 풀어줄 배경과 길거리가 있는 월영교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후 먹구름만 낀 주말. 근처 카페에서 과제를 수행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나 시간도 남는 겸 월영교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길게 늘어진 다리를 건너려는 찰나 출입구에 있는 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간단히 설명하는 간판이었는데 텍스트 밑에는 신을 들고 애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동상과 한 편지의 이미지가 함께 있었다. 동상의 정체는 조선시대 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쓴 '원이엄마'였다.

필자가 찍은 월영교 소개 간판문

영혼으로라도 함께하려던 원이엄마의 사랑


1998년, 당시 택지 개발이 한창이던 경북 안동시 정상동에서 한 문중이 무연고 묘지를 발견한다. 개발 구역 내 이뤄진 선산의 묘지 이전에 만일의 유물 발견에 대비해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발굴팀도 함께 조사에 나서다 발견된 것이다. 외관 뚜껑에 나온 '철성 이씨(鐵城 李氏)' 명정으로 고성 이씨 집안의 묘임을 확인하고 발굴에 들어갔다. 여기서 75점의 유물과 함께 '원이엄마 편지'가 발견된다. 해당 피장자는 '이응태(李應台, 1556~1586)'라는 사람으로 180cm가량의 거구로 확인된다. 또한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서 만든 미투리도 이목을 끌었다.


원이엄마 편지는 고성 이씨 남편 이응태가 31살에 죽자 부인이 남편을 향한 비통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그의 가슴 위에 얹어 묻은 것이다. 이응태가 부친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전염병에 관한 내용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병세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남편과 달리 어린 아들 원이와 뱃속 아이를 둔 부인은 본명과 묘, 관련 기록이 남지 않아 행방이 묘연하다.


가로 58cm, 세로 34cm의 한지에 친필로 쓰인 편지의 내용은 빼곡하다. 밑의 사진에서 2번을 시작으로 3번부터 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려 쓰다 위아래가 완전히 뒤집힌 4번을 끝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이에 대해 당시로선 귀했던 종이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 글쓴이가 남편에게 할 말이 많았기에 여백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이러한 구성은 자식을 생각하며 느끼는 원이엄마의 서러움과 세상을 떠난 남편과 영원한 사랑을 이루고픈 애절함을 극대화시킨다. 그 애절함은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꼭 보여주세요.
국립경국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원이엄마 편지 설명문. 3번 글이 90도로 회전하고 4번부터는 위아래로 완전히 뒤집힌다

편지와 함께 출토된 미투리도 주목된다. 미투리란 삼껍질 등을 꼬아 삼은 신발인데, 이응태 묘에 출토된 미투리는 머리카락이 함께 꼬아 있었다. 미투리를 감싼 한지도 있었지만 심하게 훼손되어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등의 일부 글귀만 확인된다. 병석에 누운 남편을 위해 원이엄마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발을 삼았으나, 남편이 죽자 저승에서도 신발을 간직한 채 이승에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달라는 의미로 미투리를 함께 묻어 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는 것은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누군가에게 은혜에 보답하거나, 무엇을 간절히 기원할 때 자신의 정성과 소망을 표현하려 행해졌던 풍습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경국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미투리

부부의 이야기가 담긴 다리. '월영교(月映橋)'


이러한 부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구성한 장소가 바로 필자가 다녀온 월영교였다. 2003년에 개통한 이곳 바닥과 난간을 목재로 만든 목책 인도교로 폭 3.6m, 길이 387m에 이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로 유명하다. 달빛이 비치는 다리를 뜻하는 월영교의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달골(月谷)마을과 수몰지에서 옮겨온 월영대(月映臺) 바윗돌에서 따왔다. 안동 상아동과 성곡동을 연결하는 다리 한가운데에 팔각정자 월영정(月映亭)이 위치하며, 다리 양옆에 설치된 곡사분수로 쏘아 올리는 물줄기와 함께 안동댐 풍광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름 그대로 달빛이 비치는 밤에는 길을 잇는 다리에 야간경관조명을 통해 방문객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형성한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야간관광명소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매년 여름 월영교 일대에서는 문화재야행 '월영야행'이 개최된다.

월영교 입구에서 찍은 목책교. 가운데 팔각 정자가 '월영정'이고 근처에 미투리를 본뜬 다리가 있다

가운데 팔각 월영정을 두고 또 다른 다리들이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미투리를 본떠 만든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보아 월영교는 이승에서 끝내 이루지 못 한 이응태와 원이엄마의 숭고한 사랑을 이어주려는 배려로 만들어진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빗줄기가 얕고 흐린 날씨로 안개가 자욱했었는데 오히려 이 안개가 안동댐과 호수의 운치에 감성을 더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목책교에 맑은 호수와 영롱한 산이 한데 어울린 풍광은 학업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물안개가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다 어느새 다리 끝에 도달하자 '안동호반 나들이길''원이엄마 테마길'이 우리를 반겼다.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안동댐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을 따라 만들어진 길로 2km가량의 데크로드에 8개의 전망대와 2개의 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자정까지 가로등이 켜져 있어 밤 산책로로 이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동호반 나들이길과 연결된 원이엄마 테마길은 편지를 배경으로 구성된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전통식 지붕으로 된 철망 벽이 있는데 편지를 넣어둔 '상사병(Love Bottle)'과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형형색색의 상사병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걸 보며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가족이나 연인들의 소망이 느껴졌다. 그렇게 1시간가량 테마길을 걷는 것을 끝으로 짧고도 깊던 기행은 마무리된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아름답고도 고달프다


원이엄마의 내용은 인문지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고,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 2009년 3월호에는 '원이 어마 한글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렇듯 '사랑'은 만국 공통으로 순수하면서도 고결한 마음의 형태다. 사람은 누구가 가슴속에 누군가를 그려내고 담고 품고 산다. 개인마다 꿈같은 연민을 만나 함께 살아가고픈 소망을 키워 나간다. 이는 곧 사랑이 토대가 되는 것이다.


특히 이응태와 원이엄마는 자신들이 꿈꾸던 연민을 이루며 사랑을 꽃피우던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편지를 살펴보면 원이엄마는 남편의 호칭을 '자내(자네)'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16세기 때 순우리말 '자네'가 상대를 높이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하던 호칭임을 알 수 있다. 현대에는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에서 쓰이되 아랫사람에게만 쓰이는 호칭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부부 사이가 평등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관계에서 어린 아들을 키우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던 이들의 사랑은 우리가 꿈꾸는 근사한 사랑의 표본이 아닐까.


그렇게 화목할 줄만 알았던 부부의 사랑은 남편의 죽음으로 몰락한다. 이는 사랑이란 월영교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가볍고도 얕은 형태임을 알려준다. 실상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사랑을 사용하는 방향과 목적이 다를수록 서로는 더 엇갈리고, 그 끝엔 이별만 남을 뿐이다. 이별과 맞닥뜨리면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한 심정으로 점철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남긴다. 그러나 원이엄마는 남편과 이룬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편지를 통해 영원한 관계를 약속했다. 편지를 읽어보면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의 애절함이 부각되나, 한편으로는 이별의 아픔을 다시 사랑과 화합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눈에 띄었다.


결국 안동에서 전해오는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을 고찰시킨다. 단순한 호감으로 쉽게 만났다 헤어지고, 서로를 향한 몰이해로 상처주는 일이 잦아진 오늘날 사랑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사랑은 태산보다 무겁고 먼지보다 가볍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랑은 쉽게 생각해선 안 될 형태로써,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모하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한다. 간혹 자신이 생각하던 사랑이 현실 앞에 무뎌지더라도 괜찮다. 점차 방향을 수정하며 성장통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사랑의 일부분이다. 그 과정은 월영교의 목책교처럼 길다. 이것이 월영교에서 필자가 깨달은 사랑의 본질이었다.


참고자료


https://www.hani.co.kr/arti/PRINT/381174.html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804010000481


https://www.andong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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