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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Oct 07. 2021

전복을 넣은 삼계탕

나는 알고 보니 추위보다는 '더위' 강한 사람이었다.


36도가 웃도는 열기를 식히려 에어컨을 바람을 쐬다가도 피부에 닿는 온도가 차갑게 느껴지는 찰나, 춥다고 호들갑을 떨며 에어컨을 꺼버리는 게 일쑤였다. 한겨울엔 적정한 선에 맞춰 놓은 난방이 1도라도 떨어지면 춥다고 호들갑을 떨며 무릎담요를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었다.


올여름은 자꾸 걷고만 싶어 졌었다.


그 여름날, 그 더위에 어떻게 그 거리를 걸었냐며 친구가 혀를 내둘렀다. 느닷없이 올라오는 기억들이 강렬한 태양열에 녹아 버렸으면 싶었다. 헉헉대며 등에는 줄줄 땀이 흘러내려 입고 나간 옷에 흠뻑 땀이 배었어도, 어쩐지 그런 것쯤은 나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정수리를 데우는 더위보다 하나의 '사건'이 모든 기억을 불러 모았고 곧 응집되어 마음이 한낮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펄펄 끓고 있었다. 그 여름은 자꾸 폭발할 거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이미 곪아 딱지가 앉은 곳을 부러 긁으며 또다시 상처를 내고 있었다. 복숭앗빛 새살이 돋은 곳에서 다시 피가 솟으면 다시 숨을 쉬고 걸었다.


초복이 지나 '중복'이었다.

그 여름을 한없이 걷던 날, 땀이 베인 가방 안에서 요란한 진동이 느껴졌다.  

'착하게 받자'라고 저장해 놓은, 엄마였다.


'삼계탕'을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어쩐지 마침 숙제를 마친 사람의 목소리였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친정을 가는 길에서는 한 시절 속에 있는 기억들이 한데 섞여 줄지어 있는 차처럼 뒤엉켜 따라붙곤 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억들을 애써서 털어 버리고 현재의 안락함에 집중하며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는 척 현관문을 열었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엄마의 얼굴이 아닌 예상치 못한 '전복'이었다.

'전복'을 처음 본 사람처럼 마치, 왜 거기 있냐는 듯, 생경한 풍경이라는 듯- 나는 식탁에 놓인 전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분주한 엄마 등에 데고 무심하게 웬 전복이냐고 물었다.

삼계탕에 한 번도 전복을 넣은 적이  없는 엄마가 전복을 비롯한 갖가지의 재료를 식탁에 펼쳐 놓고 삼계탕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따라 기본에 충실한 엄마표 '삼계탕'이 돌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전과는 다른 맛이 났다.


하얀 국물이 아닌 어딘가 어색한 진한 갈색 국물.

어쩐지 겉돌며 풀이 죽지 않은 색색깔의 채소들.

왜인지 어색하게 도드라지던 전복들.

섞이지 못하고 국물 위로 튀어나온 찹쌀들까지.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 내게 엄마는 자꾸 전복을 콕 집어 더 먹으라고 내밀었다.

배부르다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 배가 쪼그라드는 느낌과 방금 먹은 음식을 모두 게워내야 할 거 같은 어지럼증과 통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바닥에 앉아 여전히 분주한 엄마의 등을 보며 숨을 고르고 배를 쓸어내렸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또, 무언가를 펄펄 끓이며 남은 '삼계탕'을 집에 가져가겠냐고 물었다.

평소였으면 가져가겠다고 했을 텐데, 나는 손사래를 쳤고, 엄마는 펄펄 끓고 있는 냄비에 몇 가지의 재료를 더 넣었고, 지금 또 뭐 하냐고 묻는 내게 '아빠가 먹을 삼계탕'을 끓인다고 했다.


1년 전, 봄꽃이 잎을 모두 떨구고 초여름이 시작되기 전, 엄마는 슬픔이 진득하게 베인 얼굴로 한없이 약한 얼굴로 눈물을 쏟더니... 1년 후, 한 여름 한낮의 대기가 막 사라지기도 전, 아빠를 위한 '전복을 넣은 삼계탕'을 다시 끓이고 있다.


그만, 집에 가고 싶어졌다.

뒤틀리던 배도 잠잠해졌다.

여름내, 마음을 하얗게 태우던 불씨들을 잠재웠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에서 극 중의 엄마가 자못 마음에 들지 않는 딸의 남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가 한 사랑 때문에 피멍이 들었고, 시퍼런 멍이 들었다고. 그 사람을 버리고 나오는데도 눈물이 흐르더라고



울었다.

드라마 때문인지

그저 엄마 때문인지

늘, 혼자 남겨진 채로 있던 어린 나 때문인지 아빠를 위한 삼계탕을 끓인 엄마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나와 버렸다.


일순간 식어가는 마음에 무엇을 새겨야 할지, 어떤 모양새로 새겨 넣어야 할지 몰라서.

애쓰고 싶지도, 노력하고 싶지도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보아 지지도 살아지지도 않을 거 같아서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서.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라서 울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텅 비어 버린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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