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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Oct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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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고서 이사했던 집은 신도시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였다. 나는 결혼 전까지 그 집에 살고, 결혼과 동시에 그 집에서 나왔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길고 네모 반듯한 아파트를 그때 처음 보았다. 20층 복도식 아파트 13층에 4살 아래 동생과 중1인 나와 엄마 아빠가 살 집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던 집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집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살던 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집이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면 오른쪽에 작은방과 왼쪽엔 싱크대, 싱크대 앞으로 작은 화장실이 있었고, 정면으로 안방과 베란다가 있었다. 엄마는 새 아파트에 밝은 갈색의 장롱과, 식탁, 6칸 서랍의 있는 텔레비전 장- 새가구를 들여 두었다. 당시 486 뚱뚱한 컴퓨터를 중고로 구입한 엄마는 책상 의자에 앉아 게임에 몰두하곤 했었다. 5교시 6교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약하고 처연한 등 앞에 애처롭게 서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엄마의 불행이 아프고 슬프면서도 그들의 그 불장난 같은 사랑 때문에 선택하지 않은 삶 앞에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과 상황 앞에 무기력하게 놓여 바보 같고 병신처럼 서 있는 나를 용서할 수 도 사랑할 수 도 없었다.  


어둠이 지천에 깔리고서야 들어오는 엄마 아빠는 안방 문을 닫아 놓고 아파트 현관문과 베란다 바깥으로 결국에 퍼져나가는 고함을 질렀다. 싸움의 끝은 늘 아빠의 폭력이었다. 무서웠다. 아빠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공포는 커가면서 삶 곳곳에 트라우마가 되어 튀어나왔다. 사춘기 딸에게 발길질을 해대는 기억 속엔 교복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소변이 보였다. 그 옆으로 놀란 눈으로 방바닥에 쏟아진 소변을 엄마가 닦고 있다. 공포와 두려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였다는 사실은 어디에서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날도, 아빠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작은방에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닫아 놓은 방문 앞에서 귀를 틀어막고 서있는데, 엄마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들어와 빈약한 내 등 뒤로 고개를 조아리고 숨었다. 고작 내 뒤에 숨다니. 엄마가 내 등 뒤에 숨었다. 그 사실이 아직도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뒤 쫓아온 아빠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전깃줄이었다. 아빠는 나를 앞에 두고 엄마를 향해 젓 깃 줄을 휘둘렀다. 휘두른 전깃줄에 엄마는 뺨을 맞았다. 그제야 문을 닫았다. 잠겨진 문고리를 잡고 반대편 문고리를 잡고 공포에 떨고 있는 딸과 아내를 향해 문을 열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아빠를 도무지 사랑할 수가 없어- 본디 '사랑'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전깃줄에 맞아 부어오른 뺨과 전깃줄이 엄마의 뺨에 착 감겨 내던 소리를 기억하면 흠칫 몸이 떨려 왔다. 나는 어느 때고 그날 일이 떠오르면 아프게 울었다.    


아빠가 집 밖을 나가면 며칠 씩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뒤늦게야 알았다. 며칠 씩 나가서는 가진 돈을 모조리 다 쓰고 돌아오는 것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도. 도박을 하는 것도. 아빠는 집에서는 폭력을 휘두르고 나가서는 그 모든 것들을 해내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당당히 집으로 돌아와 코를 골며 잤다.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인 '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가지고 싶은 게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부모조차 묻지 않은 존재. 트라우마는 남성성을 들어내 '강함'을 들먹거리며 '여성'을 위협할 때 내가 그 하찮은 것에 공포를 느끼고 굴복했다고 느꼈을 때 튀어나왔다. 


고등학생 때였다. 익숙하고도 지겨운 소란스러운 잡음이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복도 쪽에 나 있는 작은방 창문이 깨져 있었고, 엄마는 벌게진 눈을 하고 비통하고 울분에 찬 얼굴로 밤을 새웠다. 그 밤엔 깨진 창문으로도 엄마의 구멍 난 가슴으로도 상처 난 가슴에 돌연 분노가 돌던 내 가슴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작은 방 창문을 깨뜨린 여자가 또다시 집엘 찾아왔다. 빌린 돈을 갚으라고 했던 가- 아빠를 돌려 달라고 했던 가- 아빠가 어디로 갔는지, 그 여자가 하는 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꾸 불행을 들쑤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것에 화가 치민 나는 교복을 입은 채로 아들이 군대에 있다는 얘기를 하고 서 있는 그 여자에게 세숫대야에 받은 찬 물을 얼굴로 끼얹었다. '꺼지라고' '꺼져' 울지도 않고 외쳤다. 그때, 내 목소리를 발끝에서 올라온 내 목소리를 내 분노를 내가 들었다. 분노에 찬 외침이 처음으로 그렇게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수로도 다 셀 수 없는 일들을 겪고도 매 맞는 아내, 바람피운 남편을 둔 아내라는 말이 동네에 공공연하게 돌았어도 엄마는 그 아파트를 떠나지 않았다. 아침에 나가 돈을 벌고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개, 김치찌개, 칼국수, 배춧국 같은 것들을 상에 올려놓았다. '공부 좀 해' '성적표 좀 가지고 와바' 따위의 말조차 하지 않은 엄마였다. 잘 곳과 먹을 것 말고는 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런 말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밤이 되면 잠이 오니, 잠을 자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니, 밥을 먹었다. 아빠가 어떤 사고도 치지 않고 하루가 가만히 흘러가면 감지덕지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삶이 앞으로 나아갔다. 


동생과 내가 성인이 되고서는 아빠의 폭력이 잦아들었다. 엄마를 때리는지 지키고 서있다가 함께 소리를 지르거나 휴대전화기를 들고 신고하겠다고 아빠가 하듯 겁을 주었다. 하루를 멀쩡히 보내다가도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멈추면 불안한 채 그 자리에 붙박였다. 아빠가 혹시 엄마를 때리지 않았을까. 엄마가 맞다가 죽지 않을까. 아빠의 폭력은 오랜 시간 이런 끔찍한 생각을 불러왔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안방에 누워 우는 동생을 기억한다. 내가 한 말에 상처 받아 아주 오랫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고등학교 3년 내내 현관을 열면 보이는 작은 방문 앞에서 자던 동생을 기억한다. 그 무서운 시절에 서로 연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우리가 서로 20개의 손가락을 맞잡고 함께 무엇이라도 나눴으면, 내가 동생에게 안위한 언니였으면 몇 개라도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처음 아빠의 폭력을 목도한 날 엄마는 어렸던 나에게 새빨간 피를 흘리며 "너 때문이야"라고 했다. 나는 많은 날 잊을 수 없는 그 말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어른 아이가 되고서는 어린 나와 동생을 두고 도망칠 수 도 없어서 그래서 그리 살았을까... 죄책감이 들었다. 그 말은 인생 전반에 걸쳐 나를 주춤거리게 하고 서성거리게 했다. 나를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무엇에도 오롯한 마음을 주지 못하게 했다. 

 






얼마 전에 동생 집엘 다녀왔다. 극락조가 천장까지 닿도록 자라 있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책장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사로운 갈등을 풀어가며 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제법 대화가 가능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 아빠가 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쳐다봤다. 불안한 목소리가 모든 기억을 품고 그것이 여전히 아픈 목소리가 떨리는 동생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언니, 언니 알잖아. 그게 어떤 기분인지. 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심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누구도 아닌, 동생의 말. 

많은 생각이 왔고 머문다. 그러지 않으리라, 라는 결심은 이성보다 그 기억에서 산 몸이 먼저 반응해 나를 무너지게 할 때가 많았다. 소나무 같이 단단히 서있는 남편과 해맑게 웃는 두 아이가 눈에 보이는 현실임에도 상처 난 기억 속을 유영하며 우울에 잠기는 나를 본다. 꼼짝없이 잠기기 전에 나를 찾고 부르는 소리가 있어 아픈 물을 뚝뚝 흘리며 짓는 웃음이라도 웃으며 나올 수 있어 생이 감사하기도 하다. 반짝 생기가 도는 식물과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용건 없이 나를 찾는 전화에 깔깔깔 웃는 순간. 내 행복은 그런 별 거 아니고 시답지 않은 것에 매달려 있다. 그렇게 그런 기억들을 채우고 살면 된다. 울면서 웃으면 된다. 


지금도 나는 울면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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