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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Oct 28. 2021

선생님, 선생님은 '조개'를 닮았네요

상처 받지 않으려는 마음속에는

지난 주말에 있었던 모래놀이치료사 3급 과정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동료 선생님과 작은 술집에 앉았다. 

이 술집은 3번짼데 모두 이 선생님과 함께 였다. 올 때마다 '골뱅이 무침'을 잘한다며 골뱅이 무침을 시키는 선생님이 이 날도 골뱅이 무침을 주문했다. 접시에 한가득 나온 쫄면과 새콤한 양념에 버무려져 있는 골뱅이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잘 섞인 쫄면을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입 한가득 넣고 오물 거렸다. 


4년 전 직장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딘가 차가운 구석이 있고, 성격상 까다로운 면이 있어 '꼰대' 성향을 보이는 거 같아 친해지기까지의 시간이 걸렸지만, 팀장의 타이틀을 달고 서로의 위치에서 위로하고 위로를 받으며 나는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따뜻한 면이 더 많고,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에 거침이 없어 자칫 나빠 보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이 많다는 걸 지내면서 깨달았다. 


나는 쉽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파생된 상처에 내 마음을 지켜야 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지 않으려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내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관계와 행동과 말속에서 풍기는 예의와 선함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관계를 맺었다. 마음을 열었다고 해서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시작하면 눈물부터 올라오는 이야기를...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그 공기가 어떨지 상상이 되기도 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여겼다. 


"선생님은 선생님 이야기를 잘 안 해서 우리 사이에 벽이 있는 거 같아" 

골뱅이를 먹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고, 들었다. 

"선생님, 저는 20년 지기 친구에게도 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라고 했지만, 의문 가득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나는 내 기준의 일방적인 관계를 맺어 왔을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모든 것들을 지레짐작하고 내가 차단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나는 '네' 이야기는 모두 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 무엇이든 꺼내놔 봐. 네게 향하는 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아. 내 이야기에 얹어줄 친구의 위로는 거부하고 내 위로만 가득 모아 늘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친구를 비롯한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어 왔다. 어쩌면 그렇게 해야지만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오랜 시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순식간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거 봐봐요 울기부터 하잖아요" "상처 받고 싶지 않아요"라고 힘주어 말하며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것. (어느 누가 상처 받는 게 좋겠어. 다 싫지.)

나는 정말 어떤 관계에서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인 순간에 누구보다 많이 놓였고, 결국에 상처 받고 관계를 끊고 차단했다. 버거운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허우적 대고 휘청거렸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엄마가 맞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처음이었다. 

친구도 남편도 아닌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순간, 벌게진 선생님 눈을 봤다. 


세상을 향해 욕지기를 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의 아픈 상처를 덤덤히 이야기하며... 선생님은 감추지 말고 자꾸 꺼내야 한다고 했다. 

꺼내. 

꺼내. 

꺼내. 

자꾸 꺼내야 돼. 

선생님은 '조개' 같아. 한없이 입을 벌리다가도 조금만 툭 건드리기만 해도 입을 닫아 버리는 조개-

조개라니. 

너무도 적절한 표현에 마음이 놀랐다. 

한번 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느 누구도 그런 표현을 해 준 적이 없는데 나를 내가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연 마음은 쉽게 닫히지 않고 의심을 거둔 채 관계에 신뢰와 믿음으로 쌓아가는 걸 소중히 생각했다. 이는 지내온 시간과 주고받은 연락의 빈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여겼다. 짧은 관계라도 마음의 결이 맞으면 금세 마음을 주고 관계를 끌어안았다. 친정아빠의 부고 소식을 전하지 않은 고등학교 때 친구가 다른 친구의 연락을 받고 자신을 찾은 나에게 연락하지도 표현하지도 않아서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맺음'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 건너온 세월을 뛰어넘어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익숙한 것- '진심'이고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에게 '부고'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보다 그 '말'에 더 아팠던 이유였다.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갈등과 내 마음과 달랐다 싶으면 문을 닫고는 열지 않았다. 관계 속에서 '초라' 하다고 느껴진 순간도 재빠르게 문을 걸어 잠그고 차단했다. 한 번 닫힌 문은 조개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조개 같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사소한 오해를 풀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건, 관계를 빨리 속단하고 끊어 버린 것은 상대의 '재수 없음'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어린 시절 사과받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 이기도 했다. 


나를 본 사람의 적절한 '비유'는 내가 나를 새롭게 본 거울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다름의 생활 방식과 삶의 가치를 떠나 어린 시절에 매달려 '상처' 받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편협하고 비좁은 생각 속에 있는 나를 이제는 제발 좀 꺼내보려고 한다. 

관계에 힘을 좀 빼고, 마음의 긴장을 늦추고 유연함을 길러 보려고 한다. 

괜찮은 척, 상처 받지 않은 척, 부유한 척, 쿨한 척 모든 '척'을 멈추고 내 얼굴로 진짜 내 표정으로 관계에 머물러 보려고 한다. 

내 속에 있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제 그만 꺼내 주고 '해방' 시켜 주자고. 


불온한 기억 속에 나를 더 이상 감옥에 가두지 말자고, 꺼내자고 그래서 좀 자유롭자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이제는 제발, 상처 받은 얼굴이라도 '당당'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처가 지나간 얼굴로, 진실한 표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껴안고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관계에 있기 위해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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