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덜 깬 눈으로 일어나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마치고 나면 8:30분. 학기 초엔 아이들과 함께 나와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아침 운동을 갔으나 지금은 현관에서 인사를 나눈다. 거실 창에서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꼬박 챙겨서 보진 않는다. 잘 가는지 봐야겠다, 생각이 들면 거실 창에서 아이들의 작은 등이 커다랗게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린다.
아침운동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매서운 바람에도 끄떡없을 롱 패딩의 지퍼를 단단히 올리고 겨울바람을 맞았다. 갑자기 추워져 버린 날씨에 당황한 채 걸었다.
오늘은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레슨을 마치고, 집에 와서 닭가슴살과 콩나물, 당근 볶음을 한데 버무려 먹으며 갑자기 덮친 우울 감정을 애써 밀어내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밖에서 커피를 마셔도 될 정도의 날씨라며 툴툴거렸는데, 하루아침에 불어 온 겨울바람 덕에 차를 가지고 학교 앞으로 딸을 데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옷 입는 것도 귀찮아 수면바지만 입은 채 롱 패팅을 입고 차키를 챙겨 엘리베이터에 올라 돌연 1층에서 내려걸었다. 딸이랑 같이 걸으면 덜 추울 거야- 생각을 하며. 하교 시간이 되면 항상 딸은 횡단보도를 건너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왔다. 오늘은 조금 더 이르게 나가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렸다.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짠해져 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터벅터벅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딸이 와야 할 시간인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늘 성격이 급해 꼭, oo이 나왔나요?, 참지 못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는데 오늘은 꾹- 참았다. 13:47 수면 바지만 입은 채 30분이 흘렀다. 전화를 했다. 아이는 모든 일과를 마치고 교실문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담임으로부터 들었고, 혹시 꿈누리 교실(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놀이 공간)에 있는지 봐달라고 담임선생님께 부탁하고, 혹시 길이 어긋난 건 아닌지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앞에도, 현관문 앞에도 아이는 없었다. 마침,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은 딸이 아들과 꿈누리 교실에 있다고 했고, 나는 집으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두 번째, 통화에선 딸이 원래 그곳에 없었다는 황망한 소리를 들었다. 꿈누리 교실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점심에 방문한 딸을 생각하고는 하교 후 왔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럼 대체 이 아인 어디 있지?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학교 주변, 나는 아파트 주변. 점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끔찍한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 관뒀다.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괜한 걱정을 할까, 싶어서. 일단 멈추었다. 아이를 찾기 시작한 지 10분이 흘렀고, 아이가 없어진 지 40분이 흘렀다. 소리 소문 없는 눈물이 벌컥 쏟아졌다. 14:04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니까 좀 빨리 나가라니까 뭐했어" 원망을 들었다. 남편에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하고, 울음은 어느새 소리가 되어 나왔다.
잠깐 어디서 놀다, 지금쯤 집에 가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집을 왔다 가기를 4번. 경찰은 아이의 차림새와 신상에 대해 묻고 해당 번호로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교감선생님은 학교도 최선을 다해 찾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정말 이 아이가 살아진 거 같아서. 너무 놀라면 돌연 소리가 사라진다. 가슴을 쳤다.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일에서 딸을 지키지 못한 엄마가 될까 봐 심장이 자꾸 딱딱해지려고 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아이의 사진을 전송하고 아파트에서 아이를 찾는 방송 준비를 했다. 바람은 지독히 불었고, 아파트 정문에서 지구대 경찰과 만났다. 정신이 없는 나를 보고 아이를 찾고 있다고 여경은 말했다. 14:36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찾았어요. 친구 집에서 나오는 oo를 발견했어요. 아파트 앞으로 갈게요"
경찰은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 아이가 누구와 오고 있는지를 묻고 돌아갔다. 모든 끔찍한 상상들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손이 시리다 못해 아플 정도의 바람을 맞고 아이를 기다렸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 기다림이었다.
멀리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선생님과 아이가 보였다. 마음이 여느 때 보다 차분해져 있었다. 아이를 찾은 1시간 동안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위로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눈가가 붉어지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이의 손을 내 잠바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걸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아이를 보고 있어. 내가 여느 엄마들과 조금 달라도 그건 내 방식이야. 위기의 순간에 본심이 나온다고 했는데, 당신의 인격을 보았으니. 좀 반성하고 있어" 일방적일 말을 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다면, 나는 내 탓이라고 분명 끝나질 않을 자책을 했을 것이다. 남편마저 내 자책을 인정한다는 건, 어쩌면 살아갈 이유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심연 깊은 곳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딸아이의 반에는 학기초부터 친구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고, 그 친구는 유독 딸을 더 많이 때린다고 느꼈다. 머리를 때리고 가방을 던져 얼굴에 상처를 입힌 날, 그 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아이 엄마가 내게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그 아이 엄마는 준비한 말을 내게 했다. 가위를 들고 딸아이의 목을 자르려고 한 날,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 아인 다른 친구에게 화가 나도 자신보다 힘이 센 그 친구보다 힘이 약한 내 딸을 더 많이 때렸을 테다. 내가 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그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말 외에는 없었다.
학기 내내 친가, 외가 내 친구까지 다 아는 그 친구의 집에 따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다른 아이였다면 따라가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았다. 나는 웃기게도 내 딸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누가 봤으면 웃음이 나오냐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딸은 많이 나아지고 성장하고 발달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리숙하고, 판단이 미숙하며, 의사소통에서도 온전한 '문장'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두서없는 말을 뱉으면 그 말을 골라 문장에 빠진 살을 붙여 이해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아이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딸은 집에 들어와 손을 닦고 양치를 하고 참았던 일을 먼저 했다.
가방에서 기다랗게 생긴 가래떡 꼬치를 꺼내면서 음료수 하나를 들고 오더니 이건 엄마 꺼야,라고 한다.
"어디서 났어?"
응 걔가 어디에 갔는데 그걸 꺼냈어.
"사준 거야?"
아니.
"그럼?"
가져갔어.
"돈은 줬어?"
아니.
아이는 부연 설명이 필요함을 느끼지 못하고, 부연 설명에 대해 물으면 딴소리를 했다.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린다거나, 단서를 찾아 설명한다거나, 원인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었다.
아이는 긴 가래 꼬치를 한 번 베어 물고 꼬깃한 은박지에 다시 싸서 가방에 넣은 듯했다.
"엄마가 밖에서 먹지 말래서, 한 번 먹고 안 먹은 거야?"
응, 엄마. 까먹었거든. 갑자기 까먹어서 친구 집에 갔어.
"엄마 생각은 안 났어?"
응. 생각났는데. 갑자기 까먹은 거야.
걔네 집은 아무것도 없어. 마스크도 안 내렸어. 마스크 내렸는데 지독한 냄새가 났어. 그래서 다시 쓴 거야. 근데 똥냄새야. 개가 있었던 거야.
"집에서 뭐했어?"
걔는 게임하고, 나는 계속 봤어.
"먹을 거 준다고 해서 쫓아갔어?"
응. 먼저 놀이터에서 놀다, 그다음에 먹었고, 집에 갔져.
"어떤 아저씨가 먹을 거 사준다고 해도 쫓아갈 거야?"
아니. 엄마 근데 동생한테는 비밀이야.
"뭘?" 내가 이거(가래 꼬치) 먹은 거.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만났어?"
응. 내가 나왔어. 언니가 있었거든.(그 친구 누나를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만났어. 선생님이 걔 엄마한테 전화했어.
"그런데, 걔 집엔 왜 갔어? 자꾸 때리는데"
친구들이 있으면 싫고. 없으면 좋아
"친구들이 있으면 때리고 없으면 안 때려?"
응.
비밀이라더니, 딸은 아들이 학원에서 오자마자 현관으로 달려가 오늘 자신이 언어치료도 안 가고 땡땡 집에 갔고, 놀이터에서 놀았고, 가래 꼬치 먹은 이야기를 술술술 자랑하듯 뱉어 냈다.
아들이 황당해서 묻는다.
"가래 꼬치는 무슨 돈으로 샀어? 훔친 거야?"
"아니 그냥 가졌어"
마음이 차분한 가운데에서도 급격한 슬픔이 몰려왔다. 반대로 아이를 보며 웃었다. 울 수가 없었다.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애정 하는 가방을 메고 거실을 돌아다니고 텔레비전 앞에서 팔다리를 흔드는 딸을 그저 바라보았다. 나는 저 아이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자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상' 범위에 더 속해 있다고 믿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고민했다. 나의 양육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더듬었다. 아이의 성장보다 앞서 있는 눈높이를 내려야 했다. 잘못을 두고 딸아이를 야단치지 않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별일 없이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왔다는 안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아이를 보며, 자신이 한 행동이 무엇이 어떻게 잘못인지 낱낱이 지적해 봤자 저 아인 엄마의 '야단'만 기억할 거 같았다. 나는 더 많이 기다려 주고 인내해야 했다.
작은 생명을 '사람'으로 키우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나는 이 고귀한 사명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 임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처음 간 태권도에서 발차기를 신나게 했다는 전화를 받은 나에게 아이는 씻고 나와 귀여운 얼굴로 말한다.
"엄마, 내가 말도 안 하고 땡땡이네 집에 가서 미안해요"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