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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Apr 07. 2022

"정상은 아니에요"

 딸아이의 성조숙증 의심으로 대학병원을 찾은 뒤로 8개월이 지났다.

정상 수치가 찍힌 정밀 검사 결과를 듣고 마지막 병원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의사는 말했다.

“키 크게 고기도 많이 먹이고 줄넘기도 자주 시키세요”

자리에 일어나 등을 보이는 내게 다급하게 덧붙였다.

"라면은 가급적 먹이지 마세요"




 코로나와 한파로 미뤄둔 줄넘기를 가지고 딸아이와 밖으로 나왔을 때는 매서운 바람이 불 던 1월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연신 줄넘기를 넘기는 아이 옆으로 지나가던 어르신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이리 추운 날 애가 고생이네.

무시할 수 없었던 진심 어린 말씀에 내내 마음이 불편해 긴 겨울의 창가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계절을 흘려보냈다. 틈틈이 고기도 자주 먹이고 다니던 발레도 끊고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줄넘기 특강도 병행했다. 땀이 흥건해 잔머리가 이마에 착 달라붙은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놓였다. 1개도 겨우 넘었는데 10개를 넘고 한 발도 뛰고 번갈아도 뛰고 할 때는 물개 박수로 기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메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을 때쯤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겨울을 지나오는 동안 아이는 접어 올리던 바지 밑단을 말아 올리지 않을 정도로 컸다. 여전히 또래에 비해 작은 키였고 마른 몸이기는 했어도 제 속도로 잘 크고 있다 여겼다. 아이를 씻길 때는 커져가는 걱정을 잠재울 수 없어 슬쩍 가슴을 만져보며 아프냐고 묻는 엄마이기도 했어도 큰 일처럼 여기진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 손에 붙들려 병원을 찾은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작은 핸드폰을 줄기차게 들여다보며 길고 따분한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운동 더 많이 하라고 했지.

햄버거, 피자 말고 다른 거 먹자. 

한 엄마가 아이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햄버거를 먹고 싶어 하는 딸아이를 애처롭게 설득했다. 인상을 구긴 딸의 모습과 목소리는 대체 이게 뭐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당장에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게 제 나이다운 불만 같아 안타까웠다. 텁텁하고 안쓰러운 공기가 가득했다.


 애초에 예약한 시간보다 1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의사를 만났다. 처음 딸아이를 진료한 의사는 육아 휴직에 들어가 다른 교수님이 봐주실 거라는 전화를 두 통이나 받은 상태였다. 오늘 하루 성조숙증으로 자신을 찾은 몇십 명의 아이와 걱정을 집어 먹은 엄마를 만났을 의사는 나와 딸아이의 얼굴도 보지 않고 눈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엑스레이와 지난 검사 기록을 빠른 속도로 살피며 기계적으로 말했다.

"갑자기 키가 컸네, 이렇게 갑자기 키가 크는 것도 정상은 아니에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아이의 옷을 들추며 엄지와 검지로 가슴을 꼬집은 의사는 또 말했다.

"이 나이에 몽우리가 만져지는 것도, 아프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에요"

"정상은 아니에요"

흰 종이를 내 앞으로 가져와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한 의사는 키와 성호르몬을 포함한 '성장'에 대해 설명하며 딸은 지금 이 지점이라고 알렸다. 직직 그어가는 선들을 바라보며 옆에 앉은 딸의 기분을 살피느라 교수의 말은 그저 웅웅 거리는 소음에 불과했다. 다른 말을 놔두고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골라 세 번씩이나 말한 의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벙하게 있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왔다. 1시간을 기다린 데다 처음 본 의사에게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진 나는 애꿎은 간호사에게 다음부터 1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병원의 사정만 사정이 아니라고 상해버린 마음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못을 박았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그럼 정상이 뭐냐고 따져 묻고 싶은 반감을 갖게 했다. 이 세상에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냐고 묻고 싶기까지 했다. 딸아인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다방면으로 누군가 정해 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키와 몸무게마저. 그들이 말하는 정상 수순의 발달단계와 평균에 안착하지 않은 채 자랐다. 기준과 평균에 한참 모자라 엄마의 걱정과 한숨을 먹고 자랐다. 저 아이만의 속도가 있으니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돼. 곱씹다가도 엉뚱한 행동을 하면 왜 기준에 들지 못하냐고 나무라는 엄마였어도 남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건 누구보다 싫었다.


 30분 간격으로 네 번의 피를 뽑아 수치가 기준치를 넘으면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으면 그만이지만 팔다리가 가늘고 몸에 살집도 없는 데다 생일도 느린데 일찍부터 주사를 맞게 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키가 자라지 않을 수 있고 어린 나이에 생리를 할 수도 있는 등의 걱정거리가 하나씩 늘겠지만, 아이의 인생을 크게 놓고 봤을 때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왜 우리는 기준을 세워두고 그 기준에서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건지. 답답하다가도 돌아보니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었음을 방금 알았다는 듯 쓴웃음을 삼켰다. 정상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은 이번 정밀 검사 결과에 상관없이 주사는 필수라는 말처럼 들렸다. 수치가 높지 않아도 정상은 아니니 맞으라는 듯이.


 의사는 다른 학생에게도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해 왔을까. 아이의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에 걱정을 안고 간 부모와 자신의 신체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면밀히 알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굳이 정상이 아니라는 민감한 단어를 골라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화가 났다. 정상이 아니라면, 비정상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묻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모두 어렸다는 사실이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도 다 이해하기 힘든 나이라 때로는 설명조차 하지 않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넘기는 일이 허다했다. 적어도 조금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간 엄마와 아이에게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고유한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하는 발언처럼 느껴지기도 해 잘못한 것이라고 짚어 말해주고 싶었다. 성조숙증으로 병원을 찾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걸 안다. 이유가 뭔가요? 의사들조차 속 시원히 답하지 못했다. 환경, 유전, 식습관 여러 이유들을 내놓았을 뿐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았고, 예상치 못한 자람이 부모의 머리 아픈 근심이 되기는 했어도 이것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일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이의 얼굴도 보지 않고 정상이 아니라는 말부터 한 의사는 그저 주사 하나가 자신에게 미치게 될 물질의 영향으로 밖에는 생각지 않았구나 여겨졌다.


 의도가 담기지 않았어도 의도가 담긴 말들이 있었다. '정상'만이 꼭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말들. 정상이 아니라면 비정상이라는 소린가? 구분 짓고 사람을 편협한 부류로 가르게 되는 말들. 조심해야 한다. 따뜻한 말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란 삶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매일 아이에게 타인에게 화난 감정을 쏟아내고 간혹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별 뜻 없이 한 말일 수 있는 것을 주워 담아 기어코 글을 썼으니 나부터 말조심하자고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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