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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Dec 25. 2021

나의 크리스마스는

겨울은 색이 없다. 그래서 유독 하얀색, 빨간색, 초록색에 아이건 어른이건 열광하는지도 몰랐다. 

겨울은 슬픈 색이다. 과거의 하루가 더 짙게 드리워져 밝은 새날에 자리를 내주는 모습이 아릿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도 되는 아침, 지천에 깔린 무채색이 정오가 되니 더 짙어졌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기세의 하늘이었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앉아 조그만 창으로 잿빛 하늘이 눈 한가득 들어왔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고, 오늘 뭘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마침, 라디오에선 홈파티에 제격인 음식들을 소개하는 사연들이 쏟아졌고 이윽고 다비치의 '화이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무심결에 노래를 듣다 마음이 빠르게 움직여 벌컥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멜로디에 얹은 목소리가 깜짝 놀랄 만큼 너무 밝았고, 노랫말이 너무 예뻐서 옅게 웃으며 가사를 따라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올라왔다. 


평범한 하루조차 가질 수 없었던 지난겨울이 무수히 떨어져서 노래를 듣다 그만, 울어 버린 것이다. 

불행을 견디다 이맘때가 되면 무던히 괜찮으려고 노력했던 나의 12월이 떠올랐다.  

슬픔을 감추고 막 웃어도 이상하지 않은 때였고, 불행을 멈추고 마음껏 행복할 채비를 하던 때였다. 

곧 지려는 한해의 미움도 미뤄두고 이 날의 흥분을 만끽한 채 현실을 잊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때였다.  


괜찮지 않은 겨울이었는데, 괜찮냐고 물어주는 이조차 없어 시린 외로움을 꿋꿋이 견딘 겨울을 건너와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넋 놓고 마음껏 웃었다. 

이븐 날이면 구태여 약속을 잡고 선명한 화장을 했었다. 작은 붙박이장에 구겨 넣은 옷 사이에서 고심 끝에 골라낸 옷을 입고 웃으며 가진 크리스마스를 실컷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늘 서둘러 크리스마스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 살았던 가족들은 모두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지닌 외로움에 어쩔 수 없는 등을 보였다. 정수리까지 뒤집어쓴 이불속에서 끓어오르는 괴리감에 끙끙 앓다가 잠이 들곤 했던 성탄의 밤이었다.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할지 몰라, 애매한 표정으로 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명징한 표정으로 그 하루를 누렸다. 

평범한 하루가 어쩜 그리 갖기가 어려웠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마음이 저릿해서 눈물이 올랐나 보다. 

금세 훔쳐지는 눈물이었다. 

그럼에도 노래 가사처럼 크리스마스엔 슬픈 기억이 없다는 건 너무도 다행스럽지 않냐고. 

산타의 선물을 받지 않고서도 선물을 한 아름 받은 날 같지 않았었냐고. 

크리스마스인 것만으로 기쁜 날 아녔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안위(安慰)했던 어제의 오늘,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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