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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May 19. 2022

All is well! All is well!

춘천에 가자! 잃어버린 웃음을 찾으러.

 드라마보다는 다큐를 좋아하는 20년 지기 지순이가 드라마를 추천하는 일은 드물었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서른, 아홉>을 꼬박 챙겨본다면서 미조는 자신이고, 찬영이는 나고, 세붕이는 주희라며 막 시작한 드라마에 푹 빠져 이야기했었다. 꼭 보라고 몇 번을 강조해서 응 끝나면 몰아볼게, 했더랬다. 채널을 돌리다 짤막하게 본 장면들에서 중요한 내용이 읽혀 흥미를 잃었는데 웬만해서 울지 않는 그가 펑펑 울었다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첫 회를 보고, 지순에게 톡을 보냈다.

"찬영이가 나 맞네"

결혼해버린 첫사랑을 10년째 만나는 자신을 향해 친구마저 불륜이라 한다. 자신에게만 로맨스인 첫사랑을 끊어 낼 수도 그렇다 하여 계속 만날 수 없는 처지를 마음을 다해 공감하고 나니 실없는 실소가 나왔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찬영이는 내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털털하고 무지막지하게 씩씩하고 슬픈 속내를 감춘 속은 깊은 데다 말끝마다 욕을 붙이는 그녀는 드라마를 보라던 친구와 더 닮아 있었다.

다시, 톡을 보냈다.

"찬영이가 넌데?!"   

"세명의 캐릭터가 너 같기도 하고 쟤 같기도 하고 우리 같기도 한데. 우정이 너무 예쁘더라고. 나도 그런 친구가 될게. 지금도 우린 넘치지만"


 펑펑 울었다는 친구의 말에 눈물 꼭지를 꼭 잠그고 있었는데 눈물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존재감 없던 주희가 존재감 넘치는 미조를 카페로 불러냈다. 흔들리는 눈빛만 봐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호흡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구나 느끼는 숱한 삶을 나눈 우정. 우리가 가진 우정과 닮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주희에게 미조는 말한다.

"별일 아니야, 너 힘들까 봐 그랬어" 미조의 말에 주희의 쌓아둔 서운함과 설움이 폭발했다.

"왜 너희만 힘들어!! 나도 힘들 수 있어!!"

나는 오히려 어디에서건 존재감이 없다고 느낀 주희와 더 가까웠다. 노래방을 좋아하는 것도, 잘하지 못하는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부르는 것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면 욱해 돌연 큰일을 쉽게 결정하는 것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게 편해서 선택한 것이리라는 것도.

나는 주희와 같이 울었다.  


 미조를 보면서는 어디에서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세붕이를 떠올렸다. 이마로 흘러내린 잔머리마저 쓸어 올려 단정한 모습을 유지했던 세붕이. 유연한 것 같지만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올곧은 고집스러움과 여리지만 꼿꼿한 성품이 미조와 닮아 있었다. 작약을 들고 있던 미조를 보며 프리지어를 들고 해사하게 웃던 세붕이가 떠올랐다.  




 평소보다 더 요란한 진동소리에 휴대폰을 들었다. 세붕이었다. 울고 있던 그날의 세붕이를 잊을 수 없다. 드라마 속 친구들처럼 서로의 부모님도 잘 알았던 우리였다. 두서없는 말속에 중간중간 흐느낌이 들려왔고 이내 왕왕 울음소리가 휴대폰을 넘어 주차장에서 울렸다. 암 수술을 하고 건강해진 엄마와 더 오래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이별이 코 앞까지 와서 그의 온 우주가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시커먼 주차장에 덩그러니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런 말을 뱉었다. 

 "그래도 네 엄만 천국에 가실 거잖아. 나중에 천국에서 보면 되잖아. 너무 슬퍼하지 말자" 

와중에 엄마 생각이 나서,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예수님 품에 안기지 못할까 봐. 나는 엄마 생각을 하느라 그의 슬픔에 진심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그의 슬픔을 보며 내 슬픔에 잠겨있었다. 당장에 '엄마'라는 존재를 볼 수 없다는 것. 눈앞에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아픔이고 슬픔인지 간과했다. 그녀의 슬픔을 뒤늦게 알아차린 뒤,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넌 도대체 그녀에게 친구가 맞냐고. 내내 그것이 미안해져만 갔다. 학창 시절엔 그녀의 여린 밝음을 닦아 광을 내주고 싶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떡볶이 먹으러 안 가고 도서관 간다고 했을 땐 얄밉기도 했지만 모범생인 구석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녀만 가지고 있었던 수채화 같은 밝음을 사랑했다. 올곧고 바른 생각을 제 몸에 잘 장착한 채 곧 잘 웃는 친구였는데, 엄마를 천국에 먼저 보내고 종종 통화할 때마다 들려왔던 그녀의 목소리에 매번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 없던 퍽퍽하고 습기 찬 슬픔이 묻어 나와 나는 예전 모습의 그녀가 몹시 그리워졌다.  


 옆 동에 사는 지순이를 오랜만에 만났다. 매일매일 봤던 때도 있으니 두 주를 보내고 본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늦은 점심을 먹다가 무심코 그녀의 정수리를 보고 말문이 턱 막혔다. 얘가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건지. 수채 구멍이 막힐 정도로 매일 머리가 빠졌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삼켰다. 당차고 씩씩한 게 매력이고 언제나 호방하게 앞으로 나아갔던 그녀가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의 슬픔을 꺼내 보일 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불행이 그녀 얼굴에 가득 배어 있었다. 무지막지한 씩씩함으로 이번에도 잘 버티리라 믿었는데, 막상 그녀의 힘듦을 눈으로 보고 나니 속상한 마음이 내내 가시질 않았다. 


 웃음을 찾으러 어디든 가고 싶었다. 지난한 일상을 꿋꿋이 밟으며 시끄러운 속내와 조용한 전쟁을 치르는 우리를 두고 볼 수가 없어 바람을 맞으러 춘천에 가자고 했다. 뜨겁고도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에. 마침 너무도 가고 싶은 시한부 공간이 있어 그곳엘 가자 했다. 브런치 작가이며 이번에 첫 책을 출간한 나묭 작가님이 운영하는 시한부 공유 서재인 '첫 서재'. 어쩐지 그곳에 가면 미처 하지 못한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 보일 수 있을 거 같아서. 마음속에 깃든 슬픔을 흘려보내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걷다가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무심히 웃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 평범했던 우리의 표정을 다시 찾아서 가져오자고. 간절해졌다. 행복은 별 거 아닌거에 대수롭지 않게 놓여 있으니까. 


 앞자리의 숫자가 세 번 바뀔 때마다 느리게 바뀌어 가던 우리의 표정 속에서 각자 서운함을 챙겨 집으로 가져갔던 적이 있었다. 꽤 도타운 우정이라서 그 서운함은 금세 힘을 잃곤 했지만 어쩔 땐 너무 사랑해서 마음에 흠집이 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모른 척하는 미안함으로 사랑에 사랑을 또 보태곤 했다. 철이 없다가도 어른스럽다가도 종래엔 그저 학창 시절로 돌아가 깔깔거리다가도 시댁을 화두로 한바탕 수다를 떠는 그저 그런 아줌마들이었다. 기쁘고 축하할 일 보다 슬픈 일이 더 많아지는 삶에도 함께 디딜 수 있어 참 감사한 우정을 가진 우리였다. 틈틈이 찾아오는 힘겨움을 몰래몰래 알고 소통이 끊긴 거 같지만 실은 무수히 흘려보낸 시간 안에서도 우리의 우정이 쌓이고 있다는 게 일생일대의 가장 큰 위로였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쨍쨍한 해를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그 해가 비추는 사이사이를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들풀이든 잎사귀든 시든 꽃이든 꺾어진 나뭇가지든. 그런 것을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것. 해가 비추지 못한 너와 나의 슬픔도 같이 사랑하자, 친구야. 쨍쨍했던 서로의 모습 속에 시든 슬픔도 열렬히 사랑하자. 어쭙잖은 위로 대신 함께 흠뻑 아프고 말아 버리자. 


그리고 이렇게 외치자.

알이즈웰(All is well)

알이즈웰(All is well)

알이즈웰(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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