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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Apr 17. 2022

슬프도록 참혹한 봄

세월호 8주기 기억 약속 책임

 나는 사실 봄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난히 빛나는 봄내음과 노랗고 연분홍빛으로 물드는 풍경에 차마 슬픔을 꺼내 보일 수 없어 짐짓 행복한 척을 했다. 봄의 찬란함을 노래하고 추앙하며 칭송했지만 실은 끔찍하게 싫었다. 방에 웅크리고 앉아 슬픈 보따리를 끌어안고 있기가 민망해 봄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 슬픔을 남몰래 떨구곤 했다. 유독 짧은 봄꽃의 찬란한 생명을 보며 다음 계절의 행복을 기약했다.

 

 금세 꽃망울을 터트린 벚꽃과 어느 틈에 피어난 개나리의 놀라움, 초록 사이에 숨어있는 진달래와 뜨거움을 가득 품고 마침내 입을 한껏 벌린 목련 앞에서 나는 내 탄생이 슬프기만 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생각할 때가 많았다. 검붉은 피가 묻은 엄마 입에서 흘러나온 '너 때문이야' 했던 말을  붙잡고 내 존재를 부정하기 바빴다. 엄마의 불행을 보고 사는 건 끔찍했고 내게 일어난 일을 지울 수 없으니 '나'를 지우며 살자고 마음먹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여름을 보내고, 빨갛게 물들다 결국 떨어지고 마는 낙엽을 올려다보고 나면 가을이 물러나 있었다. 시린 겨울을 무던히 견디고 마주하는 봄 앞에서 내 불행한 탄생을 매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 봄을 기뻐할 수 없었다. 지나친 봄의 화사함 앞에서 까만 내 사연이 더 도드라져 깊숙하고 깊은 슬픔을 길어 올리며 남몰래 봄을 싫어했다.


 탄생의 불행을 떠올리지 않을 만큼 행복만 가득했던 '봄'도 잠깐 있었다. 사계절을 보내고 또 사계절을 보내고 그다음 해의 '봄'이 왔을 때, 여전한 봄꽃들이 불행한 기억의 풍경을 가득 메우고 있었을 때, 임테기에 두 줄이 떴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천사를 품고 봄을 시작했던 해였다. 곰 젤리 같은 아기천사와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나는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아기천사가 내게로 온 해는 2014년 4월이었다.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행복했던 늦은 오후였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눈길이 멈춘 화면 속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배가 침몰하는 중이었고, 대참사의 현장을 전달하는 앵커의 목소리와 표현할 길 없는 그 장면이 실제인지 영화인지 눈을 끔벅이다가 입을 벌리며 말을 잃었다. 나는 뱃속의 아이를 쓰다듬으며 깊은 밤이 올 때까지 학생들이 광막한 바닷속에 잠기는 것을 보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장면에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지 과연 내가 아이를 품은 게 기쁜 일인지 돌연 비탄스러운 현실을 느끼며 조국을 등지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이민을 알아보기도 했다.  


4월은 아픈 꽃이 피고 지는 계절.

아름다운 생명이 다 피지 못하고 지고만 계절.

번쩍이는 생명력에 검붉은 피가 더 선명해지는 계절.

엄마가 태어난 달에 내가 태어났고, 빛에 둘러 싸인 생명을 소중히 품은 봄 날이었고, 피우지 못한 꽃들이 참혹하게 저문 아픈 달이었다.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걸린 빨간 현수막들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동안 배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숭고한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은 현실에 분노를 쏟다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손과 발을 보며 환희에 찼던 한 해를 보냈다. 배고픔에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분유를 주고 '엄마'라는 첫 단어에 감격하며 기고 걷고 하는 동안에 계절이 바뀌고 봄이 오고는 했다. 봄이 되면 굳이 나의 사연을 들추며 슬픔을 복기하듯 비탄한 사건이 역사 속에 묻히지 않도록 그날을 애써 기억하려 들었다. 내 슬픈 탄생과 그날의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4월이 나는 어김없이 아렸다. 




 이틀 만에 벚꽃이 만개했고, 이틀 만에 벚꽃 잎이 봄햇살을 머금은 공기 중으로 꽃비가 되어 내렸다. 공중에 흩어지는 꽃잎을 포착하려는 사람들의 팔이 시선에 매달렸다.  생일을 떠올렸고, 생생한 생명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날임을 기억했다. 참혹하고 슬픈  안에서 걸었다. 꽃잎이 가슴으로 떨어졌다. 봄을 등지고 현관문을 닫았다. TV 화면 속에서 학생들을 삼킨 바다에 벚꽃잎을 뜯어 뿌리는  엄마의 손을 봤다. 시간은 흘렀지만 결코 흐르지 못했을 삶을 봤다. 죄책감을 짊어지며 살았을 생존한 학생들 대부분이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살린 생명이 터벅터벅 걸어 삶을 이어 나갈  뿌듯하다는 청년의 말이 심금을 울렸다. 그날 시퍼런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수백구의 시신을 건져 올린 스물다섯 명의 민간잠수사들은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또렷이 떠오르는 아이들의 얼굴을 지울  없으며 몸과 마음에 생긴 상처를 평생 안고 갈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참담한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며 진실을 묵인한 정부에 일갈을 가하는 생존자의 단단한 목소리가 결국 고인이  친구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어 내릴  목이 메었다.


 세월호 8주기.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묻힌 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란다. 조금 덜 아픈 현실을 살고 다음 계절을 기대하는 삶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매일 밤 가슴을 짓눌렀을 아픔에서 조금씩 벗어난 하루가 쌓이고 쌓여 봄이 마냥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꽃잎을 온전히 떨구고서야 무성한 초록잎의 싱그러운 여름이 오는 것처럼 우리도 그러했으면. 아픈 봄이 하루빨리 지나 행복한 여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날을 함께 기다린다.  


부디, 두 손 모아 마음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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