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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Mar 28. 2022

올곧게 보내온 사랑들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보고

 나는 주로 차는 쪽 보다 차이는 쪽이었다. 남자들은 대게 나보다 조금 더 예쁜 여자를 좋아해서 덜 예쁘게 생긴 나를 찼다. 나는 좋아져 버린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있질 못해 좋아한다고 금방 고백해 버리는 타입이었다. 그들은 내 고백을 듣고 늘 애매한 행동을 보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준 사탕을 받고 연락을 주고받다가 돌연 친구로 지내자는 이야기를 했고, 고백을 듣고 기다려 달라더니 친한 언니와 사귀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거나,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더니 다른 여자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나를 먼저 좋아한 남자들의 마음을 거절하지 못해 사귀면 차는 쪽은 늘 나였다. 미안해, 그만 만나자. 그렇게 그들과 헤어지면 하루아침에 잊었다. 의미 없는 만남을 마침내 끊어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시종일관 화사한 기운으로 웃음 짓게 했던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보다 지난 연애사를 되짚었다. 

보조개가 깊게 파였던 첫사랑과의 짧은 만남과 좋아한다는 내 고백을 들은 이들이 스쳤다. 내 고백이 가닿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괴로운 일이었다. 6개월을 만났던 이와 4년을 만났던 이와 안녕을 고하며 마음이 홀가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애매한 마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 싸이월드를 뒤적거리곤 했었다. 헤어지면 왜 친구로라도 지낼 수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는 외국에서 태어났어야 해 웃긴 말을 하던 청춘이었다. 


 드라마도 책도 까다롭게 읽는 편이다. 연기에 감동이 없거나, 문체에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잘 보지도 읽지도 않는 편이라 아무리 좋다 하는 드라마와 책도 어떤 계기가 있어야 했다. 이웃 작가의 추천 글과 OST 음악을 듣고 3일에 걸쳐 몰아보기를 했다. 이승윤 님의 노래 '언덕 나무'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간질 가질 하면서도 사소한 웃음거리가 틈틈이 놓여 있던 청춘 드라마였다. 예쁜 사랑이 난무했고, 따뜻한 영상미와 배경이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꼴등과 일등의 만남이라니. 5년 동안 만나 헤어지고 다시 만나 사랑을 한다니. 한 사람만을 주야장천 사랑할 수 있다니. 미래가 없는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미래를 그려봤다. 어딘가에 생생히 놓여 있을 또 다른 웅이와 연수가 삶의 고난을 무던히 넘겨 빛바랜 사랑으로 잘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랑은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려운 거니까. 


 불행한 순간 잡고 있던 연인의 손을 놓아 버린 연수의 열등감은 나와도 닮아 있었다. 행복을 느끼는 찰나에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행복이 내 것이었던 적이 없어서였다. 어렸을 적 머물지 않은 엄마의 곁이 커서는 무감각해졌다는 지웅의 말이 곧 이해가 되었다. 행복한 순간이 신뢰를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의심이라는 불안은 불행보다 더 불편한 감정으로 작용했다. 불행과 덥석 손을 잡아 버리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었고, 부담 없는 마음이었다. 무심한 척 관심 없는 척 모르는 척 살아왔던 웅이의 숨겨진 마음도 애초에 자신 것이 아닌 행복에 대한 의심과 불안에서 기인했다. 내가 다 망쳐버린 줄 알았다는 연수의 말은 곧 내가 그런 존재라는 말이기도 했다. 너는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웅이의 다부진 말에 눈물이 났다. 




 남편은 나와 사귄 지 하루 만에 '사랑해'라고 고백했던 최초의 남자였다. 그 뒤로 매일 밤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을 들으며 매일같이 말하니, 가볍게 느껴져. 나는 퉁명스럽게 뱉었다. 사귄 지 일주일 무렵엔 포지션의 'I LOVE YOU'를 불러 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거 이별 노래 아니야?" 핀잔을 주었고 곧 무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굳건히 내비치는 신뢰보다는 마음을 괴롭히는 의심이라는 감정에 무게를 더 실었다. 너도 곧 나를 떠날 테고 다른 이들처럼 상처 주고 말 거야. 닥치지 않은 불행을 데리고 와서 예행연습을 했다. 마음을 훤히 드러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그는 내 연인이라는 이유로 고달픈 시험대에 자주 올라야 했다. 어떠한 순간에도 변치 않을 마음임에 자신감을 보이던 그를 자주 넘어뜨리며 나는 커져가는 불안을 잠재웠었다. 

사귀고 처음 맞이한 내 생일 즈음엔 그가 흰 백합을 들고 직장 앞에 서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상처를 주고 인격 모독을 일삼는 직장상사 밑에서 내가 바닥을 치며 구멍을 내고 있을 때였다. 무고한 그에게 내가 받은 설움을 돌려주며 내가 불행한 이유는 '너'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는 들고 있던 꽃을 저도 모르게 떨어뜨렸다고 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등을 바라봤겠지. 

'변합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백합을 들고 다시 나타난 그는 되려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꽃을 떨어뜨리고 너를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생일 축하한다고 노래를 불러주던 영상 앞에서 나는 나의 결핍을 붙들고 펑펑 울었다. 남편은 예수님 다음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내게 보여준 이다. 연인이 아니고 남편이 돼서도 그는 예수님 말고 세상엔 영원한 건 없다는 나의 불안한 말을 여전히 듣는다. 별말 없이 그저 듣고 마는 그의 묵직한 사랑이 고맙다. 마치 언덕 나무처럼.  


 저마다 결핍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들. 불행 중 다행은 그게 누구든 올곧게 머무는 사랑이 있다는 거였다. 연수에게 머문 할머니와 웅이의 사랑이 그랬고, 지웅에게 머문 웅이의 우정이 그랬고, 버려진 자신을 거둔 웅이의 부모님이 그랬다. 결핍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삶을 뒤흔들지만 그래도 우린 다른 이로 채워지는 마음 때문에 살게 되니, 너무 다행스럽다. 




-덧붙이기


 10년이 지난 부부생활은 마치 여름과 겨울에 적정하게 맞춰주는 온도와도 같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별 탈이 없는 것과 같다. 펄펄 끓어오르는 사랑은 식기 마련이니까. 식은 사랑이 다시 차가워지지도 뜨거워지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게 결혼생활이다. 한쪽이 너무 차갑거나 한쪽이 너무 뜨거워도 배탈이 나니,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백합을 들고 감동 가득 영상을 보냈던 이는 이제 제 돈 주고 꽃을 사지 않는 남자가 되었다. 꽃을 사는 대신 우유를 사들고 들어오고 휴지를 주문하는 남자가 되었다. 애걸복걸해야 꽃을 사 올 정도로 무드가 없는 남자임을 결혼 10년 만에 깨달았다. 


 올해 초에 카페에 마주 앉은 친구가 물었다. 

"몇 년 전에 네가 쓴 편지에 결혼 10년이 되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는데, 이젠 내가 물어 불게. 결혼 10년이 되니 너는 어때?"

"음, 현실이네"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답변을 해버리고 말았다. 


무드 없는 남편이 주는 안정감을 매일 느끼며 10년 된 고장 난 가구와 전자제품을 바꿔야 하는 현실적 고민과 함께 하루하루 늙어가는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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