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끄고릴라 Feb 13. 2023

나를 조심하세요.

부끄고릴라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성장스토리


어린 똥강아지 녀석(7살, 4살) 둘은 재우고

덜 어린 똥강아지(11살, 10살) 둘은 

알아서 놀라고 하고

나는 두꺼운 겨울 잠바를 입고

개천을 혼자 걸었다.



내 배 아파서 낳은

내 새끼는 둘이다.

그러나 오늘부터 한 3일 정도

귀여운 어린 똥강아지 둘을 같이 돌보게 되었다.



스토리는 이렇다.

오늘 아침 아이들의 엄마가 

셋째 아이를 출산하러 급하게 병원으로 갔다.

이혼으로 남편과 함께 살지 않기에

캄보디아 엄마는 한국에 가족도 없고

도움을 받을만한 혈연, 핏줄이 없다.


첫째 딸아이는 한국아빠

둘째 딸아이는 다른 나라 아빠

오늘 태어난 셋째 딸아이는 또 다른 나라 아빠...

마음이 짠하다. 

아이들의 피부색깔이 모두 다르고

아빠도 모두 달라서

아이들이 크면서 겪게 될 정체성의 혼란과 상처가

얼마나 클지 불 보듯 뻔하기에 마음이 쓰리다.



보통 그 나이의 아이들보다 한두 살 아래처럼

보이는 이유는 너무 마르고 왜소해서일 것이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본다.


"00야, 아침밥 먹었어?"


"아니요..."


아침도 그리고 저녁도 집에서 안 먹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엄마가 한국에서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러 갈 때 어린 두 딸들을

우리 집에서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안 그러면 아이들이 집에 방치될 수도 있기에...



출산하러 가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나는 두 녀석을 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때마침 오늘이 

어린이집 나들이 가는 날이었다.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 음료수를 가방에 한가득 넣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러 가는...

그런 기대되는 날인데...

아무것도 준비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하루 전이라도 알았더라면

도시락을 예쁘게 싸서 보냈을 텐데...


아기가 오늘 태어날지 누가 알았겠냐만은...

너무 당황스러웠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다른 친구들은 가방 한가득 과자와 김밥, 과일을

싸왔을 텐데... 



지금은 똥강아지 네 마리를 곤히 재우고

혼자 스탠드 불을 켜고 그 아래서 글을 쓰고 있다. 



내 둘째 딸년이 질투심이 엄청나서

내가 얼마나 눈치를 보면서

어린 두 녀석을 대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말은 동생 갖고 싶다고 난리다.

막상 옆에 있으면 

나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얼마나 눈치를 살피고 

동생들을 챙겨주지 않고

심지어 동생들을 집에 보내면 안 되냐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딸이 고맙다.

사실 그게 더 건강한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어릴 때 

내 딸처럼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마음에 병이 생겼다.

엄마한테 내 마음을...

그것도 질투 나고 샘나는 이 부정적인 마음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혼자 침울해져서는 소파 뒤에

숨어서 엄마가 나를 찾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너무 속상하고 슬펐다.

왜 나는 아직 어린데...


내가 다 이해해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참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내 딸은 서운한 감정을 표현해 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다.

그래서 더 딸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신경 쓴다.


나는 어린 두 딸을 욕조에 넣고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옷을 새로 입히고 머리를 말렸다.

물놀이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한참을 욕조에서 놀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두 녀석은

나의 어릴 때처럼 말이 없다. 표현을 하지 않는다.

싫으면 싫다고 자기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데...

목소리는 갈수록 모기처럼 기어들어가고

스스로 하려는 모습보다 늘 수동적인 모습뿐이다.


정말 나쁜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따라갈 것만 같아서

속상하고 불안하다.



밤에 자기 전에 엄마한테 영상 통화할까?

큰 녀석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이 없다.

엄마가 한참 보고 싶을 나이인데 말이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칭얼대고 우는 게 정상인데

이 두 녀석은 태연하게도 잘 지낸다.


엄마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아니 어쩌면 엄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한 것처럼...

그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

분명히 크면서 엄마의 따뜻함과 온기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결핍이

나처럼 나타날 텐데...



마음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꽉 안아주고 싶은데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받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데

아직 어려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렵고

샘이 많은 내 딸의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나에게 정이 깊이 들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아이들의 진짜 엄마에게

내가 경계를 넘는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아픔을 보는 게 힘들지만

그 또한 아이들이 감내하고 겪어내야 할 

인생의 한 그림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사랑을 주려한다.


그런데... 흠...


개천을 걸으면서 한참을 멍 때리며 터벅터벅 걸었다.

자꾸만...

자꾸만...

내 안에

내 마음 가운데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서


'사랑'이 없는 것만 같아서


속상했다.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을 다녀왔다.

상담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통화가 끝나고 한참을 울었다. 



'관계'를 잘하고 싶다.

그런데 관계에 앞서 '두려움'이 가로막는다.

아마도 왕따의 아픈 경험들 속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고 거부하는 경험들 속에서

그 상처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는지

나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상담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부끄 고릴라님은 뭐가 그리 부끄러우세요?"


저는요...

사실 전화받는 것도 어려워요.

전화가 오면 받고 싶지가 않아요.

자꾸 피하게 돼요.

문자나 카톡... 그러니까 글로 대화하는 건 좋아해요.

글을 통해서는 나를 숨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화는 제 목소리를 드러내야 하니까요.


상담선생님이 전화 주셨을 때

사실 계속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긴장하게 되고 나중으로 미루고 싶어 져요.

그래서 카톡으로


"제가 지금 부끄러워서요. 

조금 있다가 전화드려도 될까요?"라고 보냈다.



참... 내가 생각해도 그동안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면을 쓰고

또 직장 속에서 일에 관련된 일이라면

기똥차게 잘 해낸다.


그게 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가 될지언정

일이라면 일과 연관되어 있기라도 한다면

난 프로답게 멋들어지게 상담하고 조언한다.

사실은 속으로 벌벌 떨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사회생활 할 때 그렇게 뒷목이 아팠나 보다.

늘 한쪽 어깨가 뭉치고 두통에 시달렸다.

소화도 잘 안되고 갑상선에도 문제가 생겼다.




아이고...


부끄 고릴라야...


언제쯤 마음이 편해지고 나아지려나...


부끄 고릴라라는 닉네임을 지은 것도

그 가면에

익명성 뒤에 숨어서

이름처럼 마치 코스프레하듯

연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내 진짜 모습인 듯하다.




나를 알거나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시로 표현해보고 싶다.








* 제목 : 나를 조심하세요.




나를 조심하세요.


나는 가면을 쓰고 있어요.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나는 '척'을 참 잘하는 고릴라예요.




겉으로 보면 착하다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착하지 않아요.


겉으로 보면 마음이 따뜻하다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사랑을 잘 몰라요.


충분히 받지 못해서 그런지


사랑이 아니라 자꾸 집착을 하게 돼요.


집착을 하는 내가 무서워서 자꾸 도망가게 돼요.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럼에도 나는 사람이 그리워요.


사람의 온기를 기다리고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싶어 해요.


사랑을 제대로 느끼고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 난 사랑을 주어야 하는 '엄마'인데 말이죠.


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선생님'인데 말이죠.




아이에게 따뜻한 모유를 주고 싶은데


빈 젖을 물리는 엄마처럼...


그래서 아이는 칭얼댈 수밖에 없죠.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부터라도 배워가면 될까요?


다시 시작해도 그게 가능할까요?


자꾸 자신이 없어지고 소심해져 만가요.


사랑은 그냥 먹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배가 터질 때까지


토할 때까지 먹어서라도 채울 텐데요.




오늘도 길을 걷다 넘어져서 우는 아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는 걸 보면


가을이어서 더 그런 걸까요?




때로는 '엄마'의 자리를 내려놓고 싶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난... 그래도 '엄마' 니까요.


지쳐 쓰러져서 피를 토한다고 해도


그래도...


누군가의 '엄마' 니까요.


사랑이 부족한 엄마라도


여기 있어주길 바라는 아이가 있으니까요.


좀 더 건강한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작가의 이전글 나의 웃픈 자살소동 "고맙다 피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