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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끄고릴라 Feb 14. 2023

왜 코디펜던트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20년, 남편과 20년을 살아온 부끄고릴라의 이야기


인정하기 싫었다.

눈물이 난다.

기분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전거를 끌고 개천으로 갔다.



기온이 제법 쌀쌀해졌고

바람마저 칼바람처럼 느껴졌다.

옆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리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려야 하나 싶다.


내가 나의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부모를 가해자로 만드는 건

이유를 불문하고 안될 일이라 생각된다.


그것마저도 부모는 나를 사랑해서 한 행동이었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뿐인데

내가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느꼈을 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역시 나는 나를 패배자로 만들고

죄인을 자처하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만 한다면...

그게 내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단어.


'희생' , '헌신' , '사명'...


이 단어들을 삶 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야 말로 당연히 해야할 의무와 책임이라 여겼다.

내 몸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문장에서


'내 몸을 사랑하듯'이라는 부분이

잘 와닿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나의 가치를 무언가를 잘 해내는 것을 통해

업적과 성과를 통해 증명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래서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은 쏙 빼버리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분만 머릿속에 새겨버렸다.




늘 내 주변은 약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의 돌봄이 필요했던 필요하지 않았던

나는 나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약한 자를 '돌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치매로 누워계신 할머니를 수발해야 했고

우울증으로 멍하니 거울만 바라보는 엄마를

이해하고 편이 되어주어야 했고

엄마의 짜증 섞인 불평불만의 원인이 되었던

아빠가 불쌍해서 아빠랑 단둘이 있을 땐

또 아빠 편이 되어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


그래야만 가정이 화목하다 느꼈다.

내가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야만

가정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게 어린 나로서

나 스스로를 지키고

내 부모를 지키는 것이었다.


가정이 깨지는 게 너무 두려워서... 무서워서...


내 딴에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어린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는 왕따의 친구가 되어

늘 왕따 시키는 아이들로부터 친구를 보호했고

복지관에서는 사회복지사로 대상자와

마음을 나누고 진심으로 대화하며 아픔을 덜어내는

상담자의 역할을 해왔다.


한 명을 상담하면 기본 3시간이었고

어떤 때는 5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그만큼 나의 시간과 에너지, 마음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삶을 다하는 것이라 믿었다.


정말 요령도 없이 곧이곧대로 한 우물만 파고

한 길로만 가는 우직하다 못해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난 정말 도가 넘을 정도로 잘 참는다.

역경도 고난도 아픔도 상처도...

꾸역꾸역 눈물을 삼킨다.

절대로 소리 내서 울지 않았다.

억울한 순간에도

나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했다가는

도리어 혼쭐이 났기에


무서웠던 엄마의 성격을 피해

나는 무조건 참는 편을 택했던 것 같다.




겉으로 나는 참 밝고 인상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예의 바르고 처음 본 사람과도

몇 년 만난 사람처럼 대할 줄 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스무 살부터 지금 마흔까지

사회복지 현장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이다.

대부분 우울증이 있거나 결핍으로 인한

아픔과 상처가 심한 아이들이다.



'코디펜던트' 성향이 뚜렷한 나.

아니 코디펜던트의 상징이자 대표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의 내면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나 자신이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거나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고통스러울 정도로 스스로를 힘들게 했었는데

코디펜던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드디어 내가 이상한(?),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앞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고통스러운 아픔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정말 우매했고 고집스러웠다.

내가 다 옳은 줄 알았고 정답이라 믿었다.

나처럼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돌봄 중독에 빠져

내 몸과 마음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수행해 내는데만 집중했다.


그게 잘하는 것이고

나름 눈에 띌만한 성과와 업적이 있었기에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신앙과도 연결되어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했다.

고난을 통해 나를 연단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훈련이라는 것은

설교말씀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닥친 이 수많은... 끊이지 않는

어려움들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감정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헤쳐나갔다.





사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코디펜던트 성향이 강한 나는

심리상담과 치료가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도움을 받는 것은 어색하다 느낀다.



나는 나의 문제보다 타인의 문제에 집중하고

나의 문제 따위는 제일 나중에 해결해도 괜찮거나

그냥 두어도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아마도 나의 아픔을 드러내면...

나의 슬픔을 드러내면...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들어지는 것을 보는 게

나에게는 더 큰 아픔이기 때문에

아픔과 슬픔을 감추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향했던 나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고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욕구와 감정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

그동안 그 책임 따위는 쓸데없다 여겼기에...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고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 여겼기에...



건강하고 적절한 경계선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 '경계선'을

타인을 배척하고 구분하는

아주 나쁜 선이라 잘못 생각했었다.


그래서 타인과 나를 하나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나의 아픔으로

가져와버렸고 더 강하게 확대해서 아픔을 느꼈다.


어떨 땐 상대방이 그 정도로 심각한 게 아니었음에도

나 혼자 오두방정을 떨며

상대방이 죽을까 봐... 나였으면 그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 것만 같아서...

극한 두려움에 휩싸여 저혈압과 공황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다.








하아...


왜 이렇게 약한 걸까...

왜 이렇게 유리마음인 걸까...

조금만 건드려도 금이가고 깨질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의 학대 속에서

그동안 참고 참아왔고

인내심의 끝판왕은 바로 나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미련했다.



건강하지 못한 가정 속에서

학대가정 속에서

역기능 가정 속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참 어렵다.



아프지만 그렇게 40년을 살았는데

앞으로의 40년을 또 그렇게

어리석을 삶을 살고 싶지가 않다.


이놈에 오기가 들끓어서라도

그동안의 상처들이 억울해서라도

빨리 이 아픔들을 떨쳐버리고 싶다.


그래서 울면서라도 버티고 있는 거다.

인정하기 죽기보다 싫지만...

인정해야만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기에

너무 오래 버팅기지 말고 내려놓자.



자존심에 울고불고 미친년처럼 발광하고 싶지만

그렇게라도 부인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게 나인걸 어떻게 하나...






오늘은 그냥 아파하련다.

기분이 마냥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물론 나의 아이들 앞에서는 애써 웃는다.

나의 아픔보다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은

소름 끼치게 싫기 때문이다.



나의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에게 까지

대물림된 이 깊은 상처와 아픔이

더 이상은 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 뭐 좋은 거라고 물려주겠냐...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함께한 20년,

그리고 나르시시스트 남편과 함께한 20년,

도합 40년을

버티고 견뎌온 부끄고릴라.

하마터면 갈라설 뻔했다.

하마터면 삶을 정리할 뻔했다.

그런데

'버팀의 시간'이라는 글을 쓰면서

수많은 눈물방울들이

나를 위로하고 치료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 하루도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어서

이 새벽에 끄적여 본다.



"우리는 동굴에 갇힌 게 아니에요.

지금 가장 어두운 터널 중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에요.

이제 그 터널을 통과하기만 하면

나와 함께 밖으로 나와

눈물을 닦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대는 존재 자체로 '빛'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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