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라는 단어가 느껴지는 사람이 부럽다.
요즘 불안 증세가 자꾸 올라온다.
어릴 적부터 해오던 습관은
머리카락 만지기이다.
불안을 스스로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했는데
마흔이 되어서도 그 짓(?)을 하고 있다.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궁금증이다.
왜 나는 이렇게 느끼는 걸까?
왜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이 다른 걸까?
컴퓨터에 입력과 출력에 왜 오류가 나는 걸까?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이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 책에서도 많이 읽었고
너의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거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넌 지금 그대로의 모습도 훌륭해.'
'너의 존재만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어.'
이런 '존재'에 관한 말을 들을 때면
한 귀로 들어왔다가
어느새 튕겨져 나가버리는 느낌이 든다.
'응. 알았어. 반사~'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연약함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나를 위해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해주지만
아직까지도 내 안에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만 그 말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에
계속 혼자 머릿속으로 질문한다.
'알겠는데... 왜 안 느껴질까?'
어느새 나는 자동적으로
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오력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자녀교육에 관한
교육 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도서관에서 ADHD 관련 책을 읽고 또 읽고
......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걱정'에서 비롯되는 행동인 것 같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나에 대한 신뢰감이 매우 떨어진다.
자기 확신이 없다 보니
내가 이렇게 과하게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그나마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걱정과 불안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학습하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기보다
학습의 이유가 불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이만큼 공부해도 남들의 반도 못 따라
갈 것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생각이
자꾸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들고
그야말로 중독의 상황에 빠지도록 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사랑의 결핍과 돌봄의 결여로 인해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일찍 더 큰
상처와 아픔 속에 놓여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어린 시절의 나를 구해주고 싶어서...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자꾸만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나 자신이 가치 있다 살아있다 느낀다.
아이들에게 나의 존재가
무언가 영향을 주지 않으면
버려질 것만 같고
쓸모없는 것만 같고
존재의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
몸도 머리도 쉬고 싶다.
엄마라는 존재,
선생님이라는 존재,
그냥 곁에 있어주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말의 뜻을
가슴 깊이 느껴보고 싶다.
내가 불안해하면 아이들도 느낄 텐데...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데도
왜 나는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
온전히 나라는 인간이
조건 없이 사랑받아 본 경험이 없다 보니
귀로 듣고 머리로 아는 대로
타인에게 가면 쓰고 그렇게 행동은 할 수 있지만
진짜처럼 수준급으로 연기할 수는 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외로워진다.
언젠가는 들통날 텐데
사람들이 내 진짜 모습을 알기라도 하면
텅 빈 껍데기라고 손가락질할 텐데...
의도적으로 공부에 집착하는 행동을 줄이자.
자연을 많이 느끼고
오감을 열어 바람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자.
손끝에서 느껴지는 세밀한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워보자.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날 것의 내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보자.
내가 자연스러워져야, 편안해져야
아이들에게도 가장 안정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다.
아무도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울더라도 지쳐 쓰러지더라도
이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