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생긴 일

꺼내먹으며 버텨낸다

by 은조

한동안 떠나지 못했던 여행을 드디어 다녀왔다.

내가 월화를 쉬게 되는 걸 알자마자 날짜를 잡아 버렸다.

여행지는 매일 가도 질리지 않는, 농담 삼아 우리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속초’로 다녀왔는데, 역시 질리지 않는다-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여행? 하면 우리에겐

속초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됐다. 아들이 3살 막 이럴 땐 내가 일하지도 않았었고 그땐 더욱 매력에 확 꽂혀 한동안 주말마다 매주 속초를 다녔을 정도로 우리는 스며들어있었다.


심한 길치임에도 속초 길은 빤하게 찾아다니는 황남편을

봐도 봐도 놀랍고 그곳에 마음을 품고 있음이 와닿았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일, 월 이렇게 날짜를 잡아봤다.

황남매는 미리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을 제출해 놨고 황남편 일 가기 전에 오기로 계획을 잡았기에 가능했던 일정이었다.

가기 전, 일기예보가 많은 비 소식을 전하기에 취소를 해야 하나 고민을 순간 했지만 오랜만인 만큼 포기하기가 아쉬워

호텔에만 있더라도 일단 가자고 들이밀었다.


우리의 진심이 통했는지 다행히 날씨요정이 함께해 주었다. 일요일 새벽 출발하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는 날까지도 비는커녕 바람 부는 햇빛이 내리쬐어 딱! 걸어 다니기 좋은 상황들을 만들어줬다.


차도 막히지 않아 힘들지 않게 속초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침 호텔에 체크인도 빨리 할 수 있어서 바로 짐 올려놓고

속초 시장길에 나섰다. 조금 당황스럽다면 당황스러웠던 것은 먹을 걸 찾아 사냥하며 다녔는데?! 막상 먹고자 하니

딱히? 먹을 게 없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싶어 걷고 걸어 다녔지만 너무 많이 온 탓인지 새로움을 찾을 수 없어서 조금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일단 배가 고픈 우리는 오징어순대와 새우튀김을 먹기 위해 매장으로 들어갔고 다정하신? 사장님 덕분에 빠르게 주문하고 빠르게 받아서 빠르게 먹을 수 있었다.

껍질 없는 새우튀김은 황남매를 위해 양보하고 오징어순대는 별 큰 기대 없이 먹었는데 살짝 매콤한 맛이 느껴지며 입맛에 맞는 것이다. 이건 더 포장해서 먹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딸은 뭐가 있다. 항상 음식점을 가도 아예 모르는 사람들. 특히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이 딸을 보면 음료수라던지 용돈까지 꺼내 주곤 하는데 이날도 조금 뾰로통해 있던 딸아이에게 사장님께서 왜 그러고 있냐고 물었고 오빠가 음료수를 뺐어 먹어서 그런 거라는 나의 말에 그런 거냐며 바로 사이다를 서비스로 주셨다. 약간 느끼해 안 그래도 사이다 주문하려고 했었는데 딸아이 덕분에 우리가 잘 먹었다.


먹고 또 시장 한번 낚시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황남편은 오랜만에 손맛을 살짝 느껴보고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아들은 낚시하는 아빠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니면 시장 따라다니다 지쳤는지 원래 집돌이인 편이지만 호텔방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고 씻는 것이다.

마치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듯-


이번 호텔은 3층 라운지에서 바다 뷰를 보며 먹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가보려고 했는데 아들의 단호함으로 결국 황남편과 나, 딸 셋이 가야 했다. 아들은 결국 방에, 우리는 라운지로 향한 것이다.


매일을 치열하게 이곳저곳에 치여 살아가던 정글에서 벗어나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우리뿐인 그곳이,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셋이 있다 딸아이가 잠깐 방으로 가서 둘이 남았던 짧은 그 순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둘이 온듯한 착각마저 살짝 들었고 연애하던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설레는 감정마저 들던 그 순간.


딱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우린 그 공간에서 서로에게 풍기는 느낌과 표정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지며 우리를 위로해 주던 그 공기

잘 왔다고 반겨주는 듯한 살랑 거림 속 따뜻한 햇볕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순간들


월요일, 푹 자고 느지막이 아침 9시쯤 출발했다.

역시나 막히지 않고 쭉 내달릴 수 있었던 도로 위

고속도로를 벗어나 내부 위에 도착하니 벌써 공기부터 그리운 속초의 느낌.


이런들 저런들 제일 편한 집에 도착 전, 점심을 밖에서 포장해 갈까 먹고 갈까 여러 마음이 있었지만 냉장고 속 불고기가 떠올라 집으로 왔고 황남편의 솜씨, 불고기 볶음밥으로 다 같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평일의 나날들


몇 시간 전까지 분명 속초였는데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듯

우리는 빠르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쉬는 날이라 여유 있게 짐 정리하고 집안일을 하고

황남매는 학원에 가고 황남편도 일 하러 나가고-


하루 끝, 침대에 누운 아들은 역시 침대가 천국이라는

귀엽고 진리인 말을 하곤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고 그렇기에 상황도 패턴도 많이 달라져야 하는구나 싶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약간 당황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때가 됐음을 인정해야 했고 나도 바꿔나가야 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

집 나가면 모든 수고스러움이 동반되지만, 그렇지만

집 밖에서 경험, 생각과 감정들로 또 힘든 정글을

버텨낼 수 있는 야금야금 꺼내 먹을 수 있는 순간들을

느낄 수 있다는 진실이 참 매력적이다.

그래니 언제나 훌쩍 떠나는 여행을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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