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언제 벌어지는 거야

나 자신 지키기

by 은조

제기랄, 왜 입이 떨어지지 않냐고! 도대체!

말로 하세요, 불쾌하니까 몸에 손대지 마세요!라고 왜 입 뻥긋거리지 못했던 거냐고- 순간 굳은 것이 사실.

그러나 나는 입을 벌려 말했어야 한다.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직장, 병원.


일하는 곳, 지난주부터 너무 유별나 유명한 할아버지 보호자.

본인이 뭐 왕년에 고위직 근무했고 어쩌고- 그래서? 왕년 없는 사람 본 적이 없는걸.


솔직히 그 말을 어떻게 믿겠냐 싶지만 그렇다니까 그냥 그렇다니까 그렇다고 하는 걸로. 근데 그것이 온갖 트러블과 꼬투리 잡아 으스대는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이유 받아야 할 것들도 아니지만 나름 여기 병원 직원 고위? 관계자들은 다 받아주며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니 은연중에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듯하다.


다행히 나랑 크게 엮이는 부분이 없으니 오면 오나 보다~ 가면가나 보다~ 별 인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재검진을 위해 다시 그 환자가 왔고 그 옆엔 언제나처럼 그 유별난 보호자 할아버지와 딸이 있었다.


3층으로 안내하라는 지시에 나까지 넷이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올라가던 중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쇼핑백을 건네었다.


그건 전에 병원에서 빌려간 물건이었거 이미 알고 있었기에

네, 하며 받아 들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 할아버지의 손이 내 반팔 유니폼 위로 걸치고 있던 카디건 쪽으로 오더니만 옆으로 벌리는 것이다.


뭐지? 순간 굳었고 가만히 있었는데 손이 더 들어와 카디건으로 가려져 있던 내 명찰을 손으로 툭, 툭 치는 것이다.

뭐 하는 거지? 그러더니만 대뜸 성이 뭐냐면서.. 본인이 누구한테 줬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 그 물건이 혹여 잘 전달 안 됐을 때 본인이 줬다는 것을 증명돼야 하니 나한테 묻는 것이었던 것.

단지 그거 때문에 내 명찰을 보고자 손으로 잡은 거라고? 그 명찰은 가슴 쪽 보다 조금 위에 달려 있는데? 허. 염병하고 있네


바로 전달할 거라고 말하며 3층에 도착.


환자를 안쪽으로 안내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데 굳었던 생각들이 제대로 돌아오며 불쾌감이 확 피어올랐고 지나면

지날수록 그 순간 아무 말도 못 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 올라와 미칠 것만 같았다.


옆에 있는 직원샘에게 말해봐도 왜 만져? 으-라고 끝낼 뿐.


아니? 다행히 가슴을 정확히 만진 건 아니지만 그렇게 무감각하고 의식 없이 하는 행동들이 너무 기분이 더럽고 계속해서 더러워지고 치욕스러운걸. 그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만약 내가 거기서 왜 만져요?라고 말하며 불쾌감을 표현하며 내비쳤다면? 과연 다음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과연 불쾌한 행동을 당한 직원인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줄까? 단번에 그렇다고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 여긴 그런 곳이지


지금도 여전히 기분이 더럽고 수치스럽고 곱씹을수록 더욱 안 좋을 거 같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남편은 나가 직장 이야기 하는 것에 토가 나올 거 같다고 말했는데 늘 부정적이고 욕만 해대니. 그러나 그 진정한 이유 안에는 아무리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 해 봐라 조언을 해줘도 아무 말도 못 하는 나 자신에 답답함이 느껴왔던 것. 그 대가로 결국 입을 벌리지 못해 나 자신 하나를 지켜나지 못하고 나 존재를 귀하게 여기지 못한 내 자신이 역겹다.



남편 생각이, 남편의 말이 옳았다.

틀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표현하고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나는 분란을 일으키기 싫다는 보기 좋은 핑계에 늘 숨어 있었다


그냥 말 못 하는 겁쟁이고 용기 없는 인간일 뿐이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확실히 나 스스로와 약속했다.

오늘 이 순간 이후부터는 부당함에 숨지 않을 것이고 맞설 것이다. 그곳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 여기고 그곳이 아니어도 나는 나아갈 수 있으며 나는 어디서든 소중한 존재이니.


먼저 나 자신을 알고 스스로 존귀하다고 여기고 사랑해야 무언가를 하든 자신 있고 단단하게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란이 아니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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