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앞에서

by 은조

부쩍 키와 함께 살이 오른 딸아이 모습을 보면서 성조숙증?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나 인터넷에서나 보고 듣고 하는 증상들과는 달리 가슴 몽우리가 잡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애매한 부분들이 더 많아 그저 그렇게 생각으로만 그쳤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동네 언니에게 보여준 서윤이의 사진-

가만히 보던 언니는 안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가끔씩 올라온 사진에서도 느꼈었는데 급 성장한 거 같다며 성조숙증 검사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왜, 그러지 않은가?! 괜히 그런 말 들으면 그런 거 같고 해야 할 것만 같고 또, 아예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었기에...


거기다 지금 시기가 실비 보험 적용도 그렇고 제일 적당하다는 그 말에 막차탄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조급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소개받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제일 빨리 되는 날짜로 예약을 마쳤다.


그렇게 한 달 뒤.


분명 전날까진 아무런 떨림이나 긴장 따윈 없었는데 막상 당일, 딸아이 손잡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 들었고 그 감정이 아이에게 혹여나 전달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서윤이는 그저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신나 있었다.


음, 도착 후 문진표 작성을 시작하고, 항목 중 조부모부터 내려오는 유전키를 작성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적으면 적을수록 걱정이 더 생겨났고 문진을 마친 후 의사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서윤이를 보시면서 딱 뚜렷한 증상은 없으나 애매하다고 검사는 해보는 것이 좋다는 소견에 인바디, 채혈 등등 필요한 검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일주일 뒤, 결과 들으러 가는 날.

별다른 큰 이상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채혈했던 것에서 당 수치에 이상이 없기만을 바라며 서윤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조금 뒤,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을 뵙고 인바디부터 시작된 결과들. 역시 성조숙증은 아니라고 하셨고 걱정했던 당 수치도 정상이라는 말씀에 걱정이 사라지던 순간, 손바닥 엑스레이로 예상한 뼈나이가 1년 빨라도 빠른 건데 2년이나 빠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기서 나온 예상 키가 150cm 초반이라는 것.


정말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머리의 통로를 따라 지나간듯했다. 아니, 뼈 나이가 2년 빠르다는 것도 충격인데

어떻게 나와 똑같은 키가 예상키로 나온 것이냐고....

부디 많이도 아니고 나보단 더 크기만을 바랄 뿐이었는데....


150대 초반이요? 초반... 이요? 몇 번이고 묻는 나의 말에 뼈나이가 높게 나와 애매하니 3개월 뒤 다시 정확하게 검사해 보자는 선생님. 아니요? 이제 애매하다는 말은 그만-

그 정확한 검사 오늘 하고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날 바로 진행된 성선자극호르몬 검사.

쉽지 않았다. 또다시 채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서윤이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고 검사 자체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닌 처음엔 30분~ 그다음 15분 이런 식의 5번 정도 채혈이 이뤄졌다.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지만 전과 달리 두 번째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에는 결과가 걱정됐고 조숙증이 나오지 않아도 성장 속도가 빠른 건 사실이니 무조건 주사를 맞히는 것이 맞히고 싶었다. 맞힌다고 말할 것을 정하고 갔다. 결과가 어떻든.... 절대 나처럼 150cm 초반으로 살게 하고 싶진 않으니깐...!!


서윤이의 이름이 불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역시 아직 피검사 수치상 성조숙증은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마냥 안심할 순 없으니 3개월 뒤 다시 검사해 보자고 하시길래 아니다, 나는 주사를 맞히고 싶다! 의사를 밝혔다.


성장 주사를 맞히고 싶냐고 물었고 그러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같은 듯 다른 말이 시작된 것이-


선생님은 내 말에 그럼 그렇게 하자면서 손해는 아니고 시작하면 좋을 거라고 하시며 무슨 무슨 브랜드가 있다면서 기다란 뚜껑 달린 펜슬 같은 것들을 두어 개 정도 꺼내셨고 설명을 시작하셨다. 솔직히 처음엔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그 와중 내 머리에 꽂힌 건 집에서 매일, 그것도 내가 직접 주사를 놔줘야 한다고....?


내가 모르긴 몰라도 주변에서 듣기론 성조숙증 주사는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가서 맞는다고 들었기에 선생님의 설명이 끝난 후 그런 거 아니냐고 되물으니 거기서 소통의 오류가 있음이 드러났다.


나는 성조숙증 주사를 말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말하고 계셨던 것이다. 성조숙증 주사는 피검사 수치에 해당되지 않기에 맞을 수 없다는 것도 나는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고-


성장호르몬 주사는 실비가 되지 않고 몸무게 비중에 따라 달라지지만 지금 현재로선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나가는 것도... 그걸 3년 넘게 맞춰줘야 한다는 것도 그제야 귀에 들어왔던 것.


혼돈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다 알고 온 줄 알았다고 하시며 처방전은 내줄 테니 생각해 보고 시작하라는 말로 상담을 마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민망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은 다 알아보고 오는 건가 싶고 나의 무지함에 당황스러웠다.


애써 이 마음을 눌러 담고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니 비로소 현실이 보이기 시작하며 속상해지기 시작했다.

쏟아내듯 말을 내뱉은 뒤 전화를 끊고 진료비 수납을 하고 받은 처방전은 보지도 않고 가방에 접어 넣었다. 분명 약국에 가서 처방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침엔 유독 차갑게 불어대는 바람이 얄미웠는데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엔 차갑게 불어주는 바람들 덕분에 뺨이 감각 없이 얼얼해지니 잠시나마 바람들에게 고마워졌다.


치고 올라오는 자괴감에.

자식을 위해서라면 달러빚을 내서라도 다 해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던 나인데, 그 달러빚은 어딜로 간 건지?

결국 돈이 없으니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거구나.

이게 현실이구나 결국 현실은 이런 거구나-


힘이 쭉 빠졌고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서도 앞으로를 위해 노력하자 다짐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힘이 없는 나의 모습에서 또다시 절망적이었다.


주변에서 1년에 3000만 원 썼다는 게 이거였구나, 이거 때문이었구나.. 뭔가 했는데... 얼마 썼다 얼마다, 얼마다, 이런 거였구나. 해줄 수 있는 부모구나.


화살은 이상하게 날아가 편식하는 딸아이에게.

늦게 자려고 하는 모습에,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 안 듣고 그렇게 행동하면 결국 키 안 큰다고 책임회피하듯 말하면서 후회하는 행동들을 반복해대고 있다.


결국 이 또한 모든 것들이 다 나의 문제인 것을, 현실을 직시해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6화가만히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