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by 은조

“가족한테 화내는 거 아니야”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나를 보고 같이 일하는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화 안내죠?”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들이랑 남편한테만 화내요”


옷을 갈아입는 짧은 순간이라 되게 심플하고 큰 뜻 없는 대답이었는데 나의 말을 들은 옆에 있는 또 다른 연륜 있는 같이 일하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가족한테 화내는 거 아니라고-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그 말을 듣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집에 와서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은 채 그 말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며 잊히지 않아 죄책감까지 감당하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마, 남편과 냉전 상태인 시기와 겹쳐 더욱 마음이 심하게 동요됐을 것이고 짧은 순간에 대답했지만 정말 나는 가족한테만 화내는 비열한 사람이라고 내 입으로 내가 말하며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들에겐 화낼 가치도 필요도 없다고 여기며 에너지를 쓰지 않는데..

그렇다, 그건 그냥 핑계일 뿐이다. 내가 불편하고 껄끄러우니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 하지 못하는 그냥 쫄보일 뿐인 것일 뿐.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보물 같은 존재들한테는 가장 함부로 대하는 가장 못난 한심한 사람.


꽤 오랫동안 온 가족이 정을 주고 사랑으로 키운 도마뱀, 황프가 요 며칠 비실비실 거리다 출근하기 전 아침에 살펴보니 축 처진 게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그때도 남편과 냉전상태라 서로 말을 안 하고 있으며 남편이 황프를 케어하고 있는 모습등 여러 상황이 겹쳐 마음이 더욱

복잡하고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힘이 없는 모습, 죽을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든 짧은 순간 수많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 정말 죽으면 어떡하지?

아. 그러니까 살아있는 동물 키우기 싫다니깐.

아, 더 정주고 더 사랑해 줄걸.... 조금 더 집 깨끗하게 자주

갈아주고 더 신경 써줄걸…..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며.....


냉전상태인 남편과의 관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것이다. 부부사이에서 부리는 자존심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시간이 아깝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잘해줘도 모자란 시간.

백번 천 번 잘해주고 잘해줘도 후회할 텐데 괜한 자존심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직시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던 그 사실을-


또한, 여전히 엄마한테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응석을 부리며 받기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키며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렇게 한심하게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상상되는 것만 같아 끔찍해지기도 했다.


최대한 잘해주고 잘하려고 노력해도 후회하는 마당이라는데 나처럼 행동하면 절대 안 될 노릇이지…

정신 차려야만 했다.


남편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로 했다.

하면서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그러나, 그런들 다 감당할 수 있고 다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과감하게 보냈다. 단단함을 지닌 채.

그만큼 남편은 나에게 소중하고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니깐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표현할 것이다. 자존심 따윈 부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 소용없다는 경험 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조심해야 할 존재, 가장 낮아져서 감당해야 할 존재인 가족들에게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고 맞설 것이다. 그런 용기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