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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May 03. 2024

락커룸을 정리하며

미련 따위

어제저녁 피곤함을 선택하고 황남편과 오랜만에 평일, 맥주 타임을 가졌다. 보통 퇴근하고 저녁 먹을 즘 돌아오는 아빠들과 달리 황남편은 저녁 12시가 되어서야 돌아오기에 한 시간, 두 시간뿐이지만 놀다 잠자리에 누우면 금방 새벽 3시를 향해 간다. 나는 아침에 허겁지겁 준비를 안 하려면 나는 오전 6시 30분엔 일어나야 하기에 맥주타임을 가진다는 것은 각오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나에겐-


어제저녁과 개운함을 맞바꾼 아침.

딸아이 학교에서 ‘작은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전날 저녁부터 계속 떨린다고, 떨린다고, 설렌다고 하더니만

기어코 나의 알람이 울리지도 않은 새벽 볔부터 일어났다


하필 오늘.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두둥실 떠다니고 애써 조금이라고 더 잠에 빠져보려고 애썼지만 아들까지 일어나 버린 상황이 만들어졌고 둘이 함께 떠드니 심지어 내 옆에 와서 계속되는 질문들이 이어지니 결국 나는 자리에 일어났다


덕분에? 빨리 일어나서 허둥지둥거리지 않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출근을 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이 왜 이렇게 버겁지? 하는  2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도 마음이 뜨고 있구나’ 싶었지만 끝까지 잘 해내자 다짐하며 출근길을 나섰다.


다짐은 했지만 길을 걸으면서도 나에게 거는 주문은 계속 이어져야 했다. ‘끝까지 잘하자, 잘하자’

걷다 보니 병원 건물 입구에 다 달았고 같은 일하는 직원선생님을 만났다. 우린 여느 때처럼 웃으며 인사했고 다시 일터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원장님과도 똑같이 인사하고 똑같이 일하고 했지만 나만 느끼는 건지 말할 수 없는 어색함이 감돌기도 했다.

원래 그만두기 전, 생기는 감정들과 어색한 공기는 발생하기 마련이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두꺼워졌으니까


나와 같은 일하는 선생님은 갑작스레 그만둬야 하는 상황으로 앞두고 있으니 이런저런 오만가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한데, 원장님은 다른 많은 업체들과 미팅을 이어갔고 축 처져있던 모습은 온대 간대 사라졌고 심지어 약간의 텐션이 업 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 상황을 보고 있자니 나의 마음은 더 착잡해졌고 나도 미련 따윈 두지말자는 생각이 들어 나의 락커룸 문을 열었다.


그곳엔 찢어진 종이봉투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여분의 유니폼, 머리끈이며 마스크, 책,  양말, 생리대, 비상약 등등 상황에 따라 필요한 물건들이 담겨 있거나 옆에 정리되지 않게 삐져나와있는 상태였다.


락커룸 안에 있는 것들을 싹 꺼내 찢어진 종이봉투는 접어 재활용에 버려두고 내가 평상시에 들고 다니는 에코백에 물건들을 담았다. 옆에서 나의 행동을 보고 있던 직원선생님은 쇼핑백 필요하냐고 물었고 비장했지만 멋쩍음이 더 큰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그만둘 때 바로 이것만 들고나갈 수 있게 정리한 거예요”

내 말을 들은 그 선생님도 멋쩍은 듯 웃었지만 나는 정말 나올 때만큼은 온갖 걱정에 빠진  처량함에 젖은 그런 모습이 아닌 가뿐하고? 개운하게 보이는 비장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사물함을 정리하는 것이 크게 달라지겠나 싶었지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했는데 정말 마음 정리 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짐을 싸놨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싸여 있는 짐을 보게 되고 그걸 보면서 나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걸 항상 생각하다 보면 그 끝에 그렇게 미련남지 않지 않을까?!

나의 끝을 준비하는 법이다. 내가 덜 허하게


퇴근길, 원래 대부분  원장님과 함께 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선 중요하진 않지만 하루 있었던 어떠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오늘만인지 아님 더 이상 그런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을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원장님과 같이 나오지 않았고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우리에게 얼굴도 보지 않고 잘 가라고 하지도 않고 밑에 문만 걸어주고 가라고 말하며 진료실로 쌩 들어갔다.


그 행동에서 서운함도 느꼈지만 이제 점점 진짜 남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며 오늘 낮에 평소 같으면 업체 사람들이 오고 뭔가를 데모를 하거나 할 때면 항상 옆에서 지켜서 있었는데, 그게 점심시간일지라도 그랬는데 나도 오늘은? 아니 이제는 마음도 의욕도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몸을 움직이지 않았었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퇴근길에 나섰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직원선생님도 말했다.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어떤 것에 마음이 떠버리면 다시 찾기가 상당히 어렵지 않은가? 근데 그 마음이 하루아침에 떠버렸으니 찾는다는 건 아예 어림없는 소리, 그냥 탈 없이 끝까지 마무리만 잘하고자 스스로와의 다짐만이 어림 있는, 소용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이 들던 하루였다.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해보자고

되새기고 다짐해 본다.



디데이는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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