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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May 08. 2024

본능적으로

비를 맞아서라도

원래 항상 읽을 책을 직장에 두고 다니는데 오늘은 아직 읽은 책은 아니지만 아직은 읽고 싶지 않은 하나의 콕 박아 놓은 책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다른 여분의 책을 들고 가지 않았다.


오전 시간에는 밀린 글들과, 블로그를 쓰려고 마음먹었기에 책이 필요하지 않을 거 같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리고 어치피 점심시간엔 서점을 갈 예정이었고, 혹시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못 가게 되어도 일단 박아 놓은 책이 있으니까 안심이다 하며-


일 시작 전, 옆에 직원 선생님 자리를 보니 웬 벽돌처럼 두꺼운 책이 놓여 있는 것이다. 원래 책을 읽지 않다가 나와 끝이 읽기 시작하더니 나보다 더 힘이? 들어가는 책을 가져온 것이다. 궁금했다 제목이-


그렇지만 대놓고 쳐다보기엔 멋쩍어 옆 눈으로 뻗을 수 있을 때마다  봤는데 <듄>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있는 직원 선생님을 보니 나도 책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읽으며 이달을 마무리하고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중간중간 다른 책으로 바꾸지 않고 벽돌 같은 두꺼운 책으로 말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점심시간에 서점도 가야 하는데 나는 살림을 해야 하는 주부다 보니 반찬거리를 미리 배달시켜 놓으러

근처 마트에도 들려야 했다. 밥을 빨리 먹고 나서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 시간 딱 맞게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점심시간 시작 5분 전 학생 환자가 진료를 보러 왔다.

그래, 아직 점심시간은 아니지만 조금 더 빨리 올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돌고 돌았다. 더군다나 원장님은 그때 마침 업체에서 나온 직원과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셨다

다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시작이 지나가고

6분이 흐른 뒤에야 마무리하고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원래는 옆에 유튜브를 소리 안 나게 틀어놓고 보면서 먹는데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늦어질 거 같은 생각에 핸드폰을 틀지 않고 먹는 것에만 집중하여 빠르게 먹었고 나는 바로 양치질을 마치고 지갑과 키를 챙겨 나왔다.


나와보니 그제야 보이던 우산 쓰는 사람들.

내 머리 위에도 하늘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 시들어가서 우산을 가져올까, 아니면 바로 건너편 마트만 들릴까 하는 갈등이 생겼지만 이미 내 발걸음은 서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가 나름 많이 떨어져 최대한 상가 어닝을 우산 삼아 빠르게 움직여 도착했다. 마트도 가야 했기에 책을 빨리 골라야 했는데 미리 골라 생각했던 책들이 근처 근처에 다 있는 것이다.

무엇을 고를지 고민 고민하여 마침내 한 권을 꺼내 들었고

계산을 하고 나는 다시 어닝을 우산 삼아 후다닥 마트로 들어갔다.


미리 적어둔 목록을 보며 장바구니에 담았고 계산대로 향하는데 물건이 너무 적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만 원 미만이면 배달을 안 해주기에 금액을 맞춰야 했다.

계산을 하시던 직원분도 처음엔 안 될 거 같은데, 같은데

하셨지만 다행히? 딱! 3만 원이 나왔고 뭐 산 것도 없는데

3만 원이나 나온 상황에 직원분도 나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두 가지를 다 끝내고 돌아오니 딱 점심시간의 끝이었다.

조금이 아닌 비를 맞은 나는 혹시 옆에 직원 선생님이 나에게 불쾌한 냄새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자리에 앉고 나서야 다 끝냈음이 느낄 수 있었고

급한 와중에도 고민에 고민에 고르고 고른 책을 펼쳤다


오전에 어느 정도 글 쓰기를 끝내놔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읽고 있었고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오지 않아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옆에 직원 선생님도 재밌는데 빠져들어 읽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내가 느끼는 흥미로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에 가까워졌고 이제 마지막 정산하고 가려는 참에 중학생 학생이 진료를 보러 온 것이다.

딱 퇴근시간 1분 남기고 끝이 났고 직원 선생님과 나는 열려있는 병원 유리문을 닫고 빨리 나가고자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유니폼을 벗고 제 옷으로 갈아입는 찰나에 유리문을 두드리는 똑똑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애써 안 들은 척해보지만 원장님의 말소리가 들렸고 옷을 입고 나가보니 그 마지막 진료본 학생의 엄마였다. 처음엔 학생에 대해 묻고자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진료를 본다는 것-


6시.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자신이 퇴근하면 이 시간뿐이라고 말로는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옷을 다 갈아입었고 끝이 나야 하는 진료는 끝날 듯 계속해서 끝나지 않았고 퇴근시간 10분을 넘기고 나서야 끝났다.


또 말로는 죄송하다고 하고 가던 사람.

죄송하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좋겠다. 본인 위함으로 한 명이 나머지 사람들의 시간을 잡아먹는 그런 행동 말이다.


아침부터 나는 심통을 잔뜩 품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어 정말 터질 뻔했다. 아침부터 표정에 드러내지 말고자 굉장히 애썼는데 아마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선 감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생각을 쭉 해보니 속상했다. 2년 동안 그래도 트러블 없이 큰 불평불만 없이 나름 직업정신을 가지고 노력했는데 뭔가 마지막에 가까워지며 서로에 대한 그동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져서-


마지막은 정말 딱, 깔끔하게 이루어져야 그래도 서로 잘 해냈고 잘해줬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름답게 끝이 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이라고 가리지 않고 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처음과 같은 마음과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심통 속에서 너무 유치하고 어리석게 굴었다는 판단이 딱 들어 속상함이 가득 찼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거 같아서, 나를 그렇게 생각하며 끝이 날 거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안 좋아지는 저녁이 되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서 중요한 건 바뀌지 않아야 하는

나의 표정, 행동과 모습인 것이다. 최선이든 할 도리만 하든

나는 처음과 같이 그때처럼 같은 모습으로 끝을 내야 한다.

본능적인 악 속에 끌림에서 벗어나 초심 그대로의 모습으로-




디데이는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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