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프롤로그

by 삼콩

11시간 40분, 89번, 134개


여러분은 스마트폰을 하루에 얼마나 사용하나요? 우연히 들어가 본 스마트폰 사용 내역에서 저는 하루 평균 11시간 40분 스마트폰을 켜놓고, 89번 핸드폰을 깨우고, 134개의 알람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의 아침은 스마트폰 알람으로 시작돼요. 눈을 비비며 밤새 어떤 연락이 왔는지 확인합니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샤워하고, 출근길에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어요. 일과 시간에도 틈틈이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봐요. 퇴근한 뒤에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저녁을 해요. 잠깐 킨 숏폼을 두세 시간 내리 보느라 저녁 일과를 놓치기 일쑤예요. 자기 전에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수면 가이드' 영상을 틀어놓은 채로 잠들어요. 이 정도면 제가 스마트폰의 주인인지, 스마트폰이 제 시간의 주인인지 모르겠어요.


2024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brain rot’(뇌 썩음)을 선정했어요. '뇌 썩음'은 사소한 온라인 콘텐츠의 과도한 소비로 인해 정신적,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현상을 의미해요. 수많은 매체에서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경고하고 있어요.

'요즘 왜 이렇게 짜증이 늘고,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지' 하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불현듯 스마트폰을 두고 배낭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처음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을 땐, 제 손에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대신 두꺼운 가이드북이 들려 있었죠.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여행이 점점 편리하고 손쉬워졌어요. 미리 사놓은 유심으로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자마자 SNS를 확인할 수 있어요. 공항에서 흥정 없이 현지인들과 똑같은 가격으로 우버를 잡을 수 있고, 배달 어플로 방 안에서 지역 맛집의 음식을 손쉽게 받아먹어요. 메뉴판에 카메라를 비추면 낯선 외국어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튀어 올라요. 이동할 때는 구글 지도가 실시간으로 내비게이션이 되어줘요.

이국의 어느 숙소에서 열대 과일과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켜 먹고 있던 어느 오후였어요. 과일은 달고, 아이스크림은 시원했어요.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나 원래, 길을 잃기 위해 여행 다니지 않았나?'


기억 저편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어요. 호주 골드코스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뒤 쥐었던 공중전화 수화기의 감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에 전화 걸어 빈 방이 있냐고 더듬더듬 물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 종이 지도를 보며 한 시간 넘게 헤매다 겨우 숙소를 찾았을 때의 반가움. 무거운 배낭을 풀고 마을을 둘러보다 발길 닿는 카페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스마트폰의 편리함 뒤로 숨어버린 이 모든 것들을 찾아 떠나기로 했어요.


여행지는 스리랑카로 정했어요. ‘스리랑’하고 부드럽게 올라갔다가 ‘카’, 파열음에서 툭 떨어지는 매력적인 이름을 가진 나라. 예쁜 물방울 모양을 한 남국의 섬나라.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봤던 푸르른 차밭과 완행열차의 사진. 언젠가 꼭 한번 여행하고 싶어 아껴둔 나라였는데, 스마트폰을 두고 가는 이번 여행에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스리랑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오히려 좋았어요.



여행은 불편함으로 가득했어요. 예상했던 어려움도 있었고,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도 많았어요. 그러나 그 모든 불편함을 어깨 으쓱하며 웃어넘길 만큼 스리랑카는 매력적인 여행지였어요.

스마트폰 알람 소리의 방해 없이 아주 긴 하루를 보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자유로움이 있었어요. 향긋한 실론티가 담긴 찻잔을 티스푼으로 천천히 저을 때 떠오르는 고요함이 있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깊은 편안함을 느꼈어요.

이 책을 통해 스리랑카에서 찾았던 ‘불편함 속의 평화’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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