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는 관심도로 따졌을 때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UFC나 복싱 같은 격투기 종류의 스포츠를 빼면 보는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야구나 축구, 농구 같은 인기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다. 가끔 유명 선수들의 하이라이트를 볼 때가 있지만, NBA나 메이저리그, 프리미어리그를 찾아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나도 한때 야구의 광팬이던 시절이 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1년 전인 1981년 무렵의 이야기다.
그때는 고교야구의 인기가 가히 하늘을 찔렀다. 나는 그때 국민학교 5학년이었는데, 친구들과 뚝방이나 공터에서 동네야구에 푹빠져 있었고, 고교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학교는 선린상고였는데, 박노준이라는 선수 때문이었다. 당시 선린상고에는 박노준과 김건우라는 빅스타가 있었다. 선린상고의 라이벌 경북고에 류중일이 있었던 것처럼.
당시 4대 고교야구대회는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였는데, 선린상고와 경북고는 이 중 청룡기와 봉황대기 결승에서 만났다. 먼저 있었던 청룡기에서 선린상고는 연장 11회 혈투끝에 경북고에게 우승을 내줬었다. 봉황대기 결승에서 다시 만난 선린상고와 경북고. 그런데 1회전에서 박노준이 3루에서 홈으로 슬라이딩을 하다가 발목이 접히는 부상을 입었다. 팀의 두 기둥 중 하나인 박노준이 빠졌고, 결국 선린상고는 또 다시 경북고에게 우승을 내주게 된다.
44년 전이라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는 그 경기를 TV로 보았던 것 같다. 흑백TV였을 것이다. 박노준을 좋아했던 나는 박노준의 부상과 선린상고의 준우승을 내 일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박노준은 당대 최고의 고교야구 스타였기 때문에,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여고생 팬들이 쇄도했던 것은 잘 알려져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 후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나는 OB베어스의 원년팬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유지했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 야구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박노준이라는 선수를 좋아했던 마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박노준을 만날 기회가 왔다. 매년 11월에는 전북 무주에서 ‘무주웰빙태권도대회’라는 것을 하는데, 이 대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것이 우석대학교다. 그리고 현재 우석대학교의 총장이 박노준이다.
지난 11월 15일, ‘무주웰빙태권도대회’ 개회식이 무주에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박노준 총장을 만났다. 미리 친한 우석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몇 분에게 박노준 총장에게 인사시켜달라고 말을 해놓았었고, 결국 개회식이 끝나고 사진도 같이 찍고, 점심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오래된 팬으로서 기쁘기 그지 없었다. 시챗말로 ‘성덕’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도 생각해보았다. 햇수를 따져보니 44년이 되었다. 박노준 총장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시간도 없었지만, 일부러 이야기를 나누려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우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44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다른 것처럼, 내가 좋아했던 선린상고 3학년 야구선수 박노준과 우석대학교 총장 박노준은 그만큼 또 많이 다른 사람일 것이다. 어쨌거나 나의 어린 시절 우상 박노준을 만난 것은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