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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사의 풍교야박(2)

by KAKU

쑤저우를 찾은 것은 11년 만이었다. 2014년에 처음 쑤저우에 갔을 때는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고 갔었다. 한 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상하이 홍차오역에서 쑤저우역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이번에는 우시(無錫)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우시에서 쑤저우까지는 20분이 채 안 걸린다. 오랜만에 도착한 쑤저우역은 생소했다. 11년 전 기억에 비해 많이 커지고 현대식으로 바뀐 것 같다. 그러나 간단히 검색을 해보니, 쑤저우역이 새단장을 한 것은 2013년이란다. 그사이 또 달라진건지, 내 기억이 흐릿한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쑤저우역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한산사로 갔다. 우시에서 아침 일찍 출발을 했기 때문에 한산사에 도착했을 때 아침 8시 무렵이었다. 한산사 입구 앞에서 간단히 국수를 먹고 바로 들어갔다. 그리고 찾은 것은 커다란 ‘풍교야박(楓橋夜泊)’의 시비(詩碑)였다. 저렇게 큰 시비는 처음봤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시비라고 한다. 높이는 16미터에 가깝다. 하나의 시를 저렇게 크게 비석을 세워 기리는 것도 참 대단하다. 평일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한산사는 쑤저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라고 할 때, 한산사를 먹여살리는 것은 장계(張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교야박 시비를 보고 운하를 따라서 걸어가니, ‘풍교(楓橋)’가 보인다. 풍교는 크지는 않지만 운치가 있었다. 풍교를 건너가면 장계의 좌상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시인, 하나의 시가 문화가 되고 자산이 되었다. 나처럼 이 시를 생각하며 한산사를 찾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장계는 정확한 생몰년도는 알수가 없고, 대략 715년에 태어나서 779년에 죽었다고 알려져있다. 장계가 풍교야박을 쓴 것은 과거에 세번이나 떨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때가 대략 56세였다고 한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과거에도 붙지 못해서 처량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때의 장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장계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성공하고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장계를 보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비웃지는 않았을까. 스스로도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고 한탄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편의 시로 장계는 천년을 넘게 살아났았다.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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