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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재 Sep 22. 2024

공허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들것 가져와.'

'아직 살아있어.'


흐릿한 의식 속, 사람들의 구조 요청 소리가 들린다. 도로는 시체와 잔해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루이의 흐릿한 시아 속에 엘리가 보인다. 엘리의 흉부는 기계장치에 의해 지면에서부터 일정 구간 튀어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루이는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현실이고, 꿈꾸지 못했던 상상이다. 그 경계 속에서 그는 현실을 선택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저 의식을 붙잡기보다 의식을 놓아버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선다. 루이는 편안함을 택하며 의식의 끈을 놓기를 선택한다. 


' 아직 살아있어. 빨리 구급차로....'


살아있음이 고통인 순간이 있다면 루이에게는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일인이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병실 천장이었다. 마지막 기억 속 장면과 달리 밝았고, 천장의 무늬가 박테리아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차라리 기억나지 않았더라면, 기억상실증 비슷한 거라도 걸렸더라면 편했을 것을.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기억들이 루이의 의식을 잠식한다.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원했던 기적이 아니었다. 죽은 이들에게는 오만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이 기억이 나고,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한순간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마법이 있다면, 신은 우리를 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은 루이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가슴을 치면 간호사가 말리고, 난동을 부릴 때면 의사가 진정제를 놓아주었다. 어떻게든 루이를 정상인처럼 살아가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들은 그저 심장이 뛰고 의식이 있으면 살아있다로 정의한 사람들이다. 그걸 포기할 자유 따윈 본인에게는 없다.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당신들도 귀찮게 저를 돌보지 않아도 되니 좋잖아요. 왜 계속 살리는 겁니까. 당사자가 싫다는 데 왜...' . 루이의 신음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고, 지금의 치료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그의 마음은 공허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틀 뒤, 경찰이 찾아왔다. 루이가 기억을 묻으려 노력을 하면 경찰이 와서 활개를 친다. 그날의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경찰은 그날의 사건을 자세하게 말해달라고 한다. 그의 기억으로는 그녀에게로 달려오는 검은색 차량이 있었다. 왜 그녀에게로 달려온 건지는 모른다. 루이마저도 사고가 나기 전까지 그저 지나가는 차라고 생각했다. 차는 점점 엘리에게 가까워졌고 그의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흐릿한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은 엘리의 주검이었다. 경찰관 입장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듯한 표정을 한다. 그로부터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비슷한 질문을 형태만 바꾸어 계속 물어본다. 그럴수록 루이의 기억은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거짓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도피다. 그는 지금 거짓된 기억 속으로 도피하는 중이다.


'마지막 순간, 검은색 자동차의 번호판을 본 것 같아. 무슨 번호였지. 생각해 내. 생각해 내야 돼. 2..4... 엘리야..미안해 그날 내가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어리광을 받아 줬더라면.'


기억을 더듬고, 자책을 해보지만 성과는 없었다. 누군가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경찰은 멍하니 누워있는 그를 보고는 오늘은 이쯤 하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조사한 사건의 전말을 말함에 있어 주저하는 눈치다. 그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루이는 목각상처럼, 현실만 아니면 상관없는 저 너머의 세상으로 도피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엘리 씨와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사고 때까지만 해도 제 여자친구였습니다."

"엘리 씨는 그 자리에서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였지만, 결국 사망하셨습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말은 아니었다. 엘리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내가 깨어나자마자 형사가 가장 먼저 말했을 테니 말이다. 그녀와 그와의 관계는 조금만 조사해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휴대폰과 그녀의 휴대폰의 배경화면은 둘과의 추억이 설여 있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형사는 그가 일어나자마자 그녀에 대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예상을 했다고 해서 준비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심신은 아이가 갓 세상에 나온 것처럼 연약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버텨내지 못하는 상태 었다. 그런 그에게 형사의 말은 줄곧 피해왔던 사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어쩌면 사실이 아니길 바랐던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가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조짐이다. 


형사는 그의 얼굴을 보고 형용할 수 없는 살기를 느꼈다. 눈은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는 연신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일어나선 안될 일을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 어떤 말도 행동도 해서는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루이 씨" 그러고는 털털한 발검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형사가 나간 후 루이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6인실 병실에 그의 침대는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럴수록 그의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특히,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무기력은 그가 다음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여자친구를 잃었지만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평상시와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던 엘리에게 그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은 그 밖에 없었고 그는 그들 몫을 다 안고 홀로 슬픔 속에 잠겨 있었다. 길을 가던 일반인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지만, 뉴스나 사회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옆에 병상에 흘러나오는 뉴스에서는 오늘의 이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의 이슈에서는 뺑소니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왔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피곤과 무기력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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