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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재 Sep 08. 2024

루이

잠결에 알람 소리가 들린다. 적당한 온도, 안락한 침대의 포근함이 루이를 감싼다. 환경은 루이를 놓지 않으려 한다. 그는 습관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의 행동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가깝다. 일어난 후 샤워실로 가서 샤워를 한다. 따뜻한 습기에 몸이 늘어진다. 몸과 정신을 깨우기 위해 중간보다 살짝 오른쪽으로 수전을 맞춘다. '샤워엔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옆에 핸드폰을 들어 음악을 찾는다. 요즘은 댄스 음악이 유행이다. 유행에 뒤처진 루이는 top100 노래를 정주행 하기로 마음먹는다. 선곡이 나쁘지 않다. 약간의 흥얼거림이 그의 하루를 맑게 해 준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린다. 이 또한 습관에서 비롯된 무의식의 영역이다. 그가 아침에 하는 모든 행동은 무의식이라 해도 무방하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입사를 했고 입사를 했으니 회사를 다니고 있다. 앞 뒤가 맞지만 거기엔 루이 본인이 빠져있다. 그는 생각을 포기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끝이 안 보이는 건 인생 하나만으로 족하다. 생각을 비우니 오히려 편해지는 것을 느낀 그는 2년 전부터 현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어제 하루처럼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출근을 위해 집에서 나온다. 07시 40분. 지금 출근하면 20분 일찍 도착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루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는 것만큼 추해보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앞으로 2분. 다음 버스 도착까지는 3분. 미리 집에서 버스 도착 시간을 보고 나온 것이다. 아침의 1분의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하다. 1분의 여유동안 아침에 못다 한 메시지를 본다. 


'출근 중이야? 오빠 오늘 저녁 안 잊었지?' 엘리에게 온 문자다. 오늘은 그녀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루이는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금요일 이어서일까, 데이트 약속 때문일까. 금요일 데이트 때문일 것이다. '그걸 잊을 수 있나. 좀 있다 만나' 루이는 엘리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 순간 버스가 도착했다.


2 정거장 후에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루틴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 가끔은 다음 정거장에 내려 낭패를 볼 때도 있다. 그런 특별한 날은 꼭 일기에 적어두는 루이만의 취미가 있다. 가끔 있는 이벤트라 특별하고 소중하다. 버스를 탄 후에는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 요즘은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이 많이 나온다. 루이는 시끄러운 버스 정류장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이어폰을 착용한다. 샤워장에서 듣던 노래를 이어서 듣는다. 마침 사랑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여자친구와 처음 만났을 때를 추억한다.


루이와 여자친구는 대학교에서 만났다. 엘리는 대학교 4학년 졸업 작품 프로젝트의 팀원이었다. 엘리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얼음공주다. 입꼬리는 살짝 내려갔고 눈은 살짝 올라가 정형적인 고양이상이다. 엘리도 프로젝트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루이도 마찬가지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고 루이는 생각한다. 프로젝트 인원은 10명이었고 3명 7명 나뉘어서 진행됐다. 루이는 3명에 속해 있었다. 그는 그녀를 포함한 다른 그룹 3명을 맡아 프로젝트를 했다. 하지만, 그녀와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2명과 얘기를 나눴고 2명의 입을 통해 그녀의 의견을 들었다. 유일하게 그녀와 연락을 했을 때는 문자였다. 그마저도 3통의 문자가 다였다.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과 끌린다는 말을 루이는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그녀는 프로젝트 팀원들 중 가장 대화가 적었던 사람이다. 적다기보다는 안 했다가 맞을 것 같다. 그에게 그녀는 신비 그 자체였다. 프로젝트 중에도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은 없다. 그녀는 그에게 상상 속 인물일 뿐인 것이다. 그가 상상한 대로 그녀의 모습이 된다. 실체가 있고 생활도 같이 했지만 기억엔 없는 그녀가 그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루이는 카드를 찍고 버스에서 내린다. 곧바로 지하철을 타러 간다. 지하철역에 들어설 때면 빵집의 밀가루 향기가 그를 유혹한다.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그였지만 언제나 가게 앞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매번 결말은 지나침이다. 그는 군중 속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지하철역을 벗어나면 따스한 햇빛이 루이를 기다린다. '오늘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네'. 그에게 있어 오늘이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출근을 마친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그가 던진 인사는 메아리처럼 퍼진다. 그의 대답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사가 영혼 없이 돌아온다.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지만 내일도 봐야 하는 사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떤 의미가 필요할까. 의미는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과제이다. 평생의 과제로, 남들이 대신 해줄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정답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 인생이고, 그들의 낸 답이기에 그들의 인생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정답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에 들어오면 동전의 양면이 된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갈림길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라도 결국 선택하는 건 본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풀어야만 하는 과제다. 루이는 오늘도 그 그 과제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그는 앉자마자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른다. 컴퓨터가 로딩되는 시간은 짧지만 길었으면 한다. 컴퓨터의 시작은 곧 일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항상 바라지 않는 일은 올 걸 알기에, 피할 수 없을 걸 알기에 더욱 빨리 오는 느낌이다.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현대 사회에선 빼놓을 수 없는 메신저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각 나라마다 프로그램은 다르겠지만 일반 핸드폰을 사면 제공하는 메신저를 주된 어플로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여자친구로부터 밀린 답장이 와 있다. 출근 중엔 출근에만 집중하느라 메신저 알람을 까먹는다. 출근에 집중한다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직장인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의 잡담이 끝나고 일을 시작한다.


그의 일은 몇 년 동안 변곡점이 거의 없었다. 그런 반복적인 일은 그를 편안하게 해 준다. 처음에는 변화가 적은 점이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열정이 앞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열정이 잦아들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커졌다. 반복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오늘의 여유는 여자친구와의 기념일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오후 6시. 눈치 주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에게 눈치를 줄 뿐.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누구보다 빠르게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지하철역 앞으로 가기 위해 다른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퇴근 시간에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찌들어 있으면서도 밝다. 하루의 노곤함과 피로함, 앞으로 펼쳐질 자유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한 얼굴에 표현해야 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금요일이라는 글자는 설렘을 증폭시켜 사람들의 표정을 더욱 밝게 만든다. 루이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약속 장소인 베이커역에 도착한다.


베이커역 3번 출구로 올라가니 여자친구가 보인다. 루이를 본 엘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오빠, 1주년 축하해" 엘리가 말했다.


루이는 행동으로 대답한다. 주위의 시간이 멈춘 듯, 서로는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순간에 느끼는 편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예약해 둔 음식점으로 향한다. 


음식점으로 가는 길에 엘리는 오늘 있었던 일을 루이에게 말한다. 그녀가 꿨던 꿈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반려견이 와서 안겼던 이야기,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 밖에 없어서 슬펐던 이야기. 너무나 일상적이라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루이에게 말한다. 루이는 또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 마냥 호기롭게 이야기를 듣는다. 루이 또한,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들을 엘리와 함께 나눈다.


서로 옆에서 인도를 걷고 있던 와중. 루이는 엘리 건너편에서 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차도에 차가 달려오는 건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 차는 점점 엘리와 가까워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루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쾅.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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