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역 앞 광장은 늘 생기 넘칩니다. 젊음의 광장입니다. 광장 한편에는 분수대가 있는데, 널찍한 돌을 깔아놓은 평지에서 물줄기가 시간 간격을 두고 솟아오르는 분수대입니다. 분수대가 물을 하늘로 뿜어 올리면 아이들이 분수대로 뛰어듭니다. 깔깔대면서.
엄마의 어깨도 절로 들썩입니다. 어떤 엄마는 뒤뚱 걸음 걷는 아이를 잡아 주는 척하면서 분수대 사이로 잽싸게 지나옵니다. 이미 머리와 어깨 위엔 무지갯빛 물 보석이 구르고 있습니다. 아이보다 더 발그레한 얼굴은 십수 년의 시간을 뒤로 돌린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리곤 입을 가리고 깔깔깔.
고등학교가 파할 때쯤이면 어른이 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청춘이 교복 치마지만 최대한 추켜올리고 나타납니다. 언니나 엄마의 눈총은 푸른 청춘 앞에선 힘 한번 제대로 못 씁니다.
그 옆으로 스케이드 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이 TV 스포츠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재현해 보려고 높이 점프를 합니다.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탄성과 함께 나뒹굽니다. 그래도 툭 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하는 젊음이 아름다운 화정역 앞 광장. 그곳엔 젊은이들의 꿈이 영글어 갑니다.
꽃 피는 계절이 오면 온갖 꽃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이 등장합니다. 꽃으로 만든 사람, 꽃집, 꽃 대문, 꽃 산. 그리고 꽃 마음. 그래서 이름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입니다.
광장에 나온 모든 사람 얼굴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실입니다. 마음은 얼굴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
저희는 버스킹을 하면서 ‘소아암환자 돕기’ 모금을 합니다. 모금하는 마을마다 특색이 있는데, 화정역 앞 광장에는 모금하는 아기들이 정말 많습니다. 모금 통으로 향하는 아기들의 앙증맞은 손이랑 발걸음이 너무도 귀여워서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고 호사입니다.
모금 통은 키가 조금 큽니다. 너무 작은 아가들은 모금 통 위에 손이 안 닿아서 엄마나 할머니가 아기를 들어 올려 주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기들이 있고 그런 엄마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 미래는 장밋빛입니다. 나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생각하고 챙기는 것은 참으로 복된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살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 한 몸도 고달픈데 남을 위해서 마음의 자리를 내어 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을 돕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몸으로 실천하며 가르친다는 것은 더더욱 귀한 마음입니다.
아는 분 중에 베트남 호찌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형님처럼 모시는 분인데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그 나라 사람들은 좀도둑이 많은 것 같아. 깜빡하고 사무실 책상 위에 지갑을 놔둘 때가 있는데, 지갑에 돈이 있으면 슬쩍슬쩍해.”
설마 하면서 형님을 쳐다봤지요.
“그런데 다 훔쳐가는 것도 아니고 한 장이나 두 장만 빼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
“형님, 그건 좀도둑이라기보다 생활형 범죄에 가깝겠는데요.”
아는 척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살기 어렵다 보니 학용품도 늘 모자랐죠. 작은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흔해서 서로 간에 불신이 심했습니다. 몽당연필을 잃기도 하고, 책받침이 없어지기도 하고,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 전체가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손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이 나올 때까지.
동네에서도 어머니들이 모여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고구마 몇 개랑 감자 몇 개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보리쌀이 한 됫박쯤 사라졌다고 분해하시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에는 누가 가져갔는지 짐작하시는 표정이셨습니다. 실제로 어떤 때는 가져간 분을 불러서 야단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래도 끝에는 늘
“가난이 원수지. 자네가 무슨 죄인가? 애들 들러붙은 뱃가죽이 죄지.”
하시면서 되려 감자 한 바가지를 들려 보내셨습니다.
몽당연필을 가져간 아이도 몇 일간은 놀림받고 따돌림당해도 그뿐이었습니다. 다 잊어버리고 또 같이 어울리곤 했습니다.
보리쌀 뒤주에서 한 됫박만 퍼가는 어줍은 도둑이나 책받침 도둑이나 나중에 생활이 펴지면서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잘못을 꾸짖어도 죄로 다스리지 않던 어른들의 지혜가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거지가 오면 어머니는 먹던 밥도 덜어서 주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우리 집도 넉넉지 않아서 어머니 먹기에도 부족한데 말입니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의 의미가 모금하면서 가슴으로 와닿는 것을 느낍니다.
“형님, 그 사람들도 조금 생활이 피면 그런 짓 안 하게 될 겁니다”
“그럴까?”
형님도 수긍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밥 열 숟가락이 한 그릇이 된다